엄마의 굽은 어깨를 만져주세요
내 아기와 엄마가 처음 만난 건 엄마의 생일날이었다. 본인의 생일에 딸을 위한 미역국과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우산 두 개를 든 채 병원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아기를 안은 엄마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출산한 딸을 위해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짐을 들었다. 딸의 몸과 손목에 혹시나 무리가 갈까 싶어 전전긍긍 걱정 어린 잔소리와 함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미역국을 데우고 밥상을 차리고 딸과 사위 그리고 아기를 위하느라 앉을 새 없이 분주했다. 엄마는 행복했지만 조금은 쓸쓸해 보였고 엄마는 미소 지었지만 결국 몸살을 앓았다. 딸은 새로 태어난 생명을 보살핀다는 핑계로 엄마의 생일도, 엄마의 마음도 챙기지 못했다. 아픈 엄마는 혹시나 딸과 아기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혼자 병원을 다니며 출근을 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김없이 밥상을 차려냈다.
또 다른 날 엄마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 식은땀을 흘리며 분유를 만들었다. 바뀐 분유 탓에 정확한 계량을 몰랐던 엄마는 두 배가 넘는 가루를 물에 타 아기에게 물렸다. 딸은 당황했지만 더 당황한 건 엄마 자신이었다. 딸도 아기가 걱정스러웠지만 엄마를 안심시키느라 태연한 척했다. 엄마는 며칠 째 똥 쌀 때마다 낑낑 내는 아기의 고통이 본인의 탓인 것만 같아 민망함 섞인 미안함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엄마는 또 분주했다. 굳이 힘든데 상을 차리지 말라고 만류해도 밥때가 되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때로 반찬이 부실할 때면 어김없이 미안해했다. 엄마는 가족의 중심이고 뿌리였지만 그 양분을 먹고사는 가족들은 당연하게 엄마의 에너지를 뽑아먹었다. 가족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존재였다.
“엄마 어깨 좀 펴!”
가뜩이나 굽은 엄마의 어깨가 아기를 안느라 더 굽었다. 속상한 딸은 어깨를 피라며 엄마를 핀잔했다.
“엄마 어깨 좀 피라니까? 그렇게 굽히고 있으니까 더 아프지!” 딸은 아기를 안으며 또 엄마를 나무랐다. 엄마는 딸에게 뭐라고 답했더라. 그냥 뒤돌아 무언가를 또 정리했던 것 같다.
딸의 식사가 끝나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엄마의 남편은 지나치게 많이 쓰는 생활비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는 머쓱하게 “내가 카드를 많이 쓰나 봐.”라고 답했다. 쓸데없이 비싼 떡이며 빵을 산다고 남편은 엄마를 한 번 더 나무랐다. 엄마의 지나친 소비의 중심이었던 딸은 머쓱했다. 엄마가 사 온 딸과 떡은 딸을 위함이었으며, 카드값의 대부분은 아기용품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속상해 보였고 굽은 어깨를 피지 못 한 채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흐린 날씨는 조금씩 빗방울을 만들어내었다. 엄마는 바깥에 널어놓은 빨래를 걱정했다.
딸은 아까 빨래를 걷었다고 엄마를 안심시켰지만 엄마의 마음은 어루만지지 못했다. 딸은 엄마의 굽은 어깨를 걱정했지만 다정한 손길로 주물러주지 않았다.
엄마에게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였을까. 아기를 달래고 조용해진 새벽녘이 되어야 딸은 엄마를 생각했다. 문밖으로 엄마의 고단한 코골이가 넘어왔다. 다정하지 못 한 딸은 ‘내일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줘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로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