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숲 Apr 25. 2020

세월은 왜 기억을 짙게 하는가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리뷰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 416합창단 지음, 김훈 김애란 글 / 문학동네

세월호 합장단의 이야기를 담은 책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가 도착했다. 포장을 뜯고, 표지를 읽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긴다. 노래 가사를 읽는다. 소리 내어 읽어본다. 노란 리본을 묶고, 노란 옷을 입고 합창하는 이들의 사진을 본다. 웃고 있다. 울고 있다. 눈을 감고 있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은 세월호 유족과 일반 시민 단원이 함께하는 416 합창단의 이야기다. 1부에서는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와 합창단원의 짧은 인터뷰가 실렸고, 2부에서는 김애란, 김훈, 지휘자 박미리, 프로듀서 류형선 님의 글이, 3부는 5년 간의 공연일지, 마지막 4부에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손 편지가 수록되었다. 노래와 손 편지를 읽은 부모들의 육성은 CD로 만들어져 함께 동봉되었다. 


매년 4월 16일을 덜컥 마주한다. 올해는 취업 고민을 하다가, 알바 자리를 찾아보다가, 소설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며 개나리를 보다가 만났다. 매년 4.16을 잊고 있던 나를 마주한다. 가방 끝에 달아놓은 노란 리본이 유독 진해 보여 낯이 뜨겁다. 그러나 잊지 않은 것이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노래를 기억한다. 너무나 당연한 가사가 마음을 찌르는 사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린 사회에 개탄했지만 노래하며 촛불을 드는 사람들에 용기를 얻었다. 


세월호를 다룬 영화 <생일>을 봤다. 늦은 저녁, 아파트를 울리던 ‘순남’의 비명을 기억한다. 순남은 세월호에서 아들 수호를 잃었다. 옆집 우찬 엄마는 비명을 듣자 달려와서 아들의 옷을 붙잡고 울고 있는 순남을 부둥켜안아주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 생일 파티 열린다. 한 명 한 명의 취미와 좋아하는 것, 사소한 습관, 생전의 말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모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을 기록한 책을 샀다. 읽지 못할 것 같았던 책을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읽었다. 


연극 ‘장기자랑’을 본 적이 있다. 세월호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연기한다. 무대에 선 어머니들의 눈빛과 표정을 기억한다. 뜨거운 조명 아래서 연기하고 춤을 추며, 객석에 하늘나라에 간 아이들이 앉아 있을 거라 상상하지 않았을까. 공연장을 나가는 부모님들은 소녀 같았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p.53 숨 나누기 _ 김애란


세상에 완벽한 애도도 온전한 치유도 없을 테지만, 권력과 자본이 모든 걸 앗아간다 해도 한 인간으로부터 끝끝내 뺏어갈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나는 세월호 유족들을 보며 배웠다. 지금도 세월호 유족분들은 합창뿐 아니라, 연극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남기려 노력하고 계신다. 그 세상이 설사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앗아간 형편없는 세계라 하더라도 말이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만든다. 연극을 올리고 피켓을 든다. 생일을 축하하고 편지를 쓴다. 리본을 단다. 노래를 부른다. 잊으라고 하는 사람들, 지겹다고 하는 사람들, 막말을 퍼붓는 정치인들과 시간의 풍화 속에서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세월호와 아이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새롭게 알게 된 것을 기억한다. 기억은 점점 짙어졌다. 짙어진 기억은 삶에 녹아든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이름들을 기계적으로 외는 게 아니라, 

내 삶으로 죽음의 문화와 맞서며,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416합창단에서 여전히 노래합니다. 

- 일반 시민단원 김진수 

p. 109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의 문화와 맞서는 것이다. 죽음의 문화는 국가와 사회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문화다. 사람보다 돈이, 시스템이, 속도가 우선시되는 문화다. 그리고 이를 가리기 위해 끊임없이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묻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방송하는 사회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묻는 것이다. 위험하지 않냐고 의심하고 추궁하는 것이다. 소중한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짙어진 기억을 삶에 녹여내는 것은 자유를 지키는 일이고, 때론 목숨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제대로 했다면, 그래서 책임자를 처벌했다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과잉진압도 없었을 것이고, 세월호 초동대처 또한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호가 어떤 결말을 맺는지, 우리가 어떤 모습을 모이는지가 다른 싸움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만들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p.149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우리는 종으로 횡으로 연결되어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내가, 과거의 나와 현재, 미래의 내가 촘촘히 이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단어로 나를 분리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서사로 다른 이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이다. 잊지 않음으로 더 이상 잊을 수 없는 참사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동안 시간은 흐를 것이다. 


어떤 시간은 지날수록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한다. 어떤 시간은 지날수록 작은 것까지 기억하게 한다. 어떤 시간은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나는 이것을 또한 오래 기억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