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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May 10. 2020

당신의 시간이 멈추지 않아도 좋다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 

삑-! 

큰 점수차로 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터벅터벅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선수처럼 집에 돌아왔다. 10년 만이었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 내내 자취를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돌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방은 낯설고 깨끗했다. 


패잔병이 된 기분이랄까. 퇴사야 흔하지만 내가 번 돈으로 알아서 먹고살지 못하고 집에 온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돌아온 집에서 마주해야 했던 건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좀 하지 마” “돈이 그렇게 중요해?” 엄마에게 자신 있게 내뱉었던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알아서 하지 못했고 걱정이 많으며 돈이 없다. 그래서 집에 온 것이다. 말이나 하지 말 걸. 숨고 싶었다.


제법 오랫동안 푹 쉬고 싶단 마음과 빨리 직장을 구해서 집을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엉켜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거나 하기는 싫고,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뭐하고 지내는데?” 친구들의 질문이 두렵다. “뭐 이것저것 준비도 좀 하고” 나는 지금을 ‘준비 기간’으로 정의했다. 도약을 위한 발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이렇게 외치다가


조언을 

듣는다.


"뭐라도 일단 해." "아무 데나 일단 원서 써봐." "집에 있어봤자 뭐하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의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백수인 내 시간만 멈춰있는 게 아니라 대기업에 들어간 엄마 친구 아들의 시간도, 작품을 척척 내는 예술가의 시간도, 유튜브 구독자가 팍팍 늘고 있는 누군가의 시간도 멈췄으면. “여러분! 모두 멈추세요! 타-임입니다! 이제부터 그냥 먹고 자고 싸고 이렇게 당분간 지냅시다. 마치 저처럼요!” 무엇을 위한 준비인지 모르는 준비기간은 공허하고 외롭다. 내 시간은 답답하게 멈춰있다. 

그릇이 많이 올라온 밥상에서였다. “아이고 내가 사실 진짜 이뻤어. 니들은 모르지만~” 동생의 자화자찬에 반격을 가한 할머니의 농담에 오랜만에 웃었다. 그런데 젓가락을 들고 웃다 옆을 보니 비슷한 얼굴이 깔깔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옆에도 그 옆에도. 가족과 이렇게 웃어 본 지가 오랜만이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과 수저를 부딪치며 밥을 먹은 지가 오랜만이었다. 엄마랑 방에서 오래 얘기를 하거나 아빠의 낮잠 자는 모습을 보거나 동생과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것,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할머니를 보는 게 모두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멈춰 있지 않은 것일까.


그제야 내게 시작되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멈춰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작한 것이 꽤 많았다. 매일 산책을 시작했다. 해가 지는 시간쯤 집 주변을 걷는다.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다. 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만나면 속으로 인사한다. 노을은 매일 신비롭다. 노을에 비친 사람들은 예쁘다. 뒷산에서 고라니를 봤다. 응? 진짜다. 


봄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메일로 뉴스를 보내주는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스탠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세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있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봄이 지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절은 여름을 시작할 것이다.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비틀대는 아이처럼, 수영장 물에 동동 떠 숨쉬기를 연습하는 사람처럼 시작은 비틀대고 첨벙 댄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가 어색해 방으로 들어가고 동생과 말꼬리를 잡고 싸운다. 매일 같은 산책코스가 지겹다며 친구에게 칭얼대고 글을 쓰려고 빈 종이를 앞에 두고 막막해한다. 


그러나 지금이 무언가를 위한 ‘준비 기간’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어도 좋다. 인생에 ‘타임’은 없다. 다급히 손가락으로 t를 만들고 팔로 T를 그어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다만 시선을 옮길 수 있을 뿐이다. 시작하는 것들로 시선을 옮긴다.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은 시작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로 쓰이지만 시작의 아름다움을 감지한 말이 아닐까. 설렘, 두려움, 용기, 실패, 오해, 적응. 시작은 씨앗처럼 두 글자에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시작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시작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주변의 시작을 소중히 여기고자 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세우고 고개를 두리번대며 시작을 찾고자 한다. 푸른 잎을 돋아내는 나무처럼 그렇게 시작은 은밀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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