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사는 일본 사람
작년 9월, 부서를 옮기면서 내게는 새롭게 일본인 매니저가 생겼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리서치팀은 보고라인 체계가 그렇다고 했다.
상사와는 부서를 옮기기 전 실제로 만나 인터뷰 시간을 가졌고, 이후에는 1주일에 한 번씩 비디오콜을 하며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경제학 박사에 리서치 경험이 풍부한 상사는 진정한 “똑부“였다. 열정이 넘치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성장과 동기부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내게 똑부 상사는 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버거운 부분도 있었다. 상사가 내게 바라는 기대치 자체가 높았고, 해줬으면 하는 일도 너무 많은데 분명하기까지 해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밤낮없이 일하게 만들었다.
부서이동 후 6개월 정도가 지나니까 내게 일어난 소소하지만 중요한 변화와 성장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좋아했던 글쓰기는 더 좋아졌고, 늘 자신이 없었던 발표 실력 역시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팀원들에게 어떤 팀장이 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지만 이 역시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다. 내 상사처럼 팀원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팀장”이 되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몰라 리더십 강의까지 들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까 노력해서 더 발전시켜야 하는 게 무엇인지도 명확해져서 어떤 면에서는 좋은 부분도 있다. 부족하지만 잘해야 하는 영역을 더 많이 노력하고 연습하면 분명 나아질 거고, 그 과정 중에 성장도 하게 될 테니까.
힘들기도 했지만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며 의미 있게 보낸 지난 6개월, 상사와는 비디오콜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팀원들과의 미팅을 위해 한국에 온다고 해서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내게 더 많은 일이 주어질까 봐 겁먹은 것도 있다? 푸흡) 한국에 머무르는 기간 내내 상사가 원하는 미팅 스케줄을 짜는 것도 다소 버거운 일이었다. 일과 시간 중 미팅에 더해 점심, 저녁식사 일정까지 계획해야 했으니까. 이런 이유로 상사가 한국에 오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실제로 만나 얘기해 보니 오프라인 미팅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화면에서 뛰쳐나와 내 앞에 실제로 앉아있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일에 대한 고민과 염려를 더더더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원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었지만 실제로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상사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해졌다. 시간의 제약 없이 좀 더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기도 했다. 내가 일이 너무 많다고 지나친 하소연을 했는지(?) 상사는 월 2회로 단축한 콜을 월 1회로 줄여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너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많이 들었는데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난 널 믿을 거야.
네가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살면서 상사한테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일적으로 동기부여가 되고 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좋은 상사를 만나 다행이다. 갑자기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좋은 건가? ㅋㅋㅋ) 동시에 나도 잘 배워서 꼭 이렇게 성숙한 상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도 해본다.
살면서, 특히 일적으로 힘든 일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도 좋은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게 바로 내 삶 속에서 귀한 보석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