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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성장러 김양 Apr 08. 2024

딸에게 쓰는 편지 No.13

현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마음은 받아줘라


현아,


엄마는 최근에 엄마가 작성한 보고서를 팀미팅에서 리뷰하던 중 팀장님의 인신공격을 받았단다. 모든 팀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당한 인격 모독이 꽤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남았지.


도입시설에 대한 전략장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엄마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내용을 넣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일을 못한다는 질책을 받았단다. 엄마의 실수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까지 같이 혼나는 상황이 되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이 부분은 이러이러해서 잘못됐으니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팀장님의 이런 화풀이 발언은 처음도 아니었단다. 그동안의 비난은 그래도 더 나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건설적인 피드백이라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고, 엄마가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참아왔지. 돌이켜보니 정신력으로 버텨온 시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더욱 그동안 받았던 비난과 질책까지 더해서 엄마 내면의 인내심과 정신력이 통째로 바닥난 기분이 들었단다.


그래서 팀장님이 다음 날 엄마 기분에 대해 물었을 때 바로 엄마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팀장님의 발언 이후 진심으로 너무 기분이 나빠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무기력해졌다고, 엄마가 전략적인 컨설팅과는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이야.


팀장님은 엄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업무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잘 개선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고 해. 최근 회사에서 받는 실적 압박에 대한 부분도 있었고 말이야. 팀장님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감정적으로 대응한 부분에 대해 엄마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말이야.  


한국은 여전히 회사에서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분명한 사회란다.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에는 어느 정도로 변화했을지 궁금하구나. 이런 상황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다. 그래서 엄마는 팀장님에게 "사과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지. "사과한다는 건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의미도 포함되는 건데 제 말이 맞는 거죠?"라는 말로 앞으로는 그런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받았지.


엄마는 이런 연유로 일주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현아, 엄마는 상대가 용서를 구할 때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그 일을 없던 일로 잊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하지만 그건 엄마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나"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팀장님이 며칠간 정말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싫었거든.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회사를 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는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일단은 휴가 중에 잘 쉬면서 변화하는 엄마의 내면을 살펴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역시나 엄마의 내면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가장 큰 변화는 꼴도 보기 싫었던 팀장님과 일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란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팀장님의 반응과 기분을 맞추려 신경 쓴 부분도 있었는데 이 부분을 내려놓고 나니 일에만 집중하는 일도 가능해졌단다.


"사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는데 마음속에서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이 일이 더 이상은 엄마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기기 시작했어.


이제 엄마는 회사에서 일에만 집중해서 더 열심히 일할 거고,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더 강한 내면을 만들어 갈 거야.





현아, 용서는 구하는 일도 힘들지만 받아들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더구나. 그렇기 때문에 용서는 구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잘못을 하면 어렵더라도 용기를 내서 용서를 구하고, 상대가 용서를 구하면 그 용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시간이 걸린다 해도 말이야.


엄마도 그 어려운 일을 해냈잖니?


오늘따라 네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엄마, 그때 그 이야기 듣고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웠어요"라고 말해주면 너무 행복할 것 같거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나의 딸아,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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