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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주말

충분히 감사한 일상입니다

by 프로성장러 김양


이른 토요일 아침, 친한 언니의 모친상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지금 내게 들이닥친 코로나가 어느 정도의 전염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꼭 위로해주고 싶어서 일부러 사람이 없는 시간을 선택했다. 원래 의도는 언니 얼굴만 잠깐 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한 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에게는 대화 상대가 필요했고, 나는 언니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조문은 원래 위로의 말을 주고받는 만남의 자리이기도 하니까. 내가 위로가 되고 싶었는데 언니와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내가 위로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이른 아침의 방문이 혹시 폐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우려였다. 방문객이 없는 조용한 시간, 언니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마스크 밖으로 삐져나오려는 콧물을 겨우 닦아내고, 손에는 빠르게 소독제를 뿌리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코로나의 전염성을 걱정하며 선택한 조문 시간이 우리 둘 모두에게 힘이 된 것 같아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구나 싶었다.



이제 우리가 부모상을 겪을 나이가 됐나 봐요

내 나이대 친구와 지인들의 부모상 소식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20-30대에 가끔씩 있었던 친한 친구의 부모상은 너무 충격이었다. 이제는 그렇구나 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가 됐다. 물론 지금도 너무 속상하지만 생애주기에서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안다. 더 나이가 들면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니까”, “호상이야” 같은 말을 하게 되겠지. 그래도 누군가와 죽음으로 이별하는 일은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캐나다에 사는 친언니에게 너무 예쁜 무지개 사진을 선물로 받았다. 와아. 정말 아름답고 멋진 무지개다. 자연의 신비. 자연의 위대함.



이번 주 코로나(=나)를 피해 부모님 댁에서 지낸 아이도 집으로 데려왔다. 마음 같아선 주말까지 할머니랑 같이 있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데려오기로 정했다. 7살 아이에게는 엄마를 만나지 못한 5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고. 몸이 많이 나아졌으니 마스크를 잘 쓰고 같이 밥만 먹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내 집에 가니까 너무 좋다, 예~~

집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아이가 함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집에 가니까 너무 좋다는 말이 어찌나 귀엽게 들리던지.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가 킥보드를 타고 들어온 아이가 공바구니를 가져오며 마당에서 게임을 하자고 한다. 바구니나 원 안에 공을 골인시키는 게임이란다. 그래 집 안에 같이 있는 것보단 마당이 더 안전하겠지 싶어 미세먼지가 ‘아주 나쁨’인데도 마스크를 쓰고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쉬워 보이는 게임였는데 한 개도 못 넣었다. 헉.



날씨가 급 더워졌다. 햇빛이 드니 낮에는 여름처럼 덥다. 마당의 잔디는 아직도 완벽한 초록색 옷을 잊지도 못 입었는데! 아이는 오늘 날씨가 1년 내내 여름인 태국처럼 더웠다고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했지만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어 행복했고, 내가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코로나를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코로나로부터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맘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혼자 있을 땐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힘들어서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킬지언정 마스크를 벗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 아이가 돌아온 집 안에서는 내내 마스크를 잘 쓰고 있다. 심지어 불편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는 보통의 나날들이 좋다. 특별한 사고나 사건 없이 지나가는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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