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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Jan 27. 2022

[첫사랑] 무제(無題)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세 번째-이별

#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번째-이별 편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 한다. 하지만 자신 있게 부르는 특정 노래가 하나 있었으니 그 제목으로 하여금 바로, 이수영의 <사랑에 미치다>이다.


내 눈이 참 나빠서 못 봤죠
그댈 이렇게 훔쳐 가는걸
내 맘이 너무 무뎌져서 몰랐나 봐요
바보같이
맘 놓고 난 울 수도 없네요
내 맘 속에 사는 그대라서
영원히 그대 모습 잃어버릴까 봐
나 겁이 나네요
나 이렇게 눈을 감죠 그대가 흐를까
맘을 닫죠 더 멀어질까 봐
그대 기억이 흐려질까 봐 또 이렇게


원래 이별하면 절절히 와 닿는 가사들이 많은데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와 닿아서 계속 울먹여가며 부르다 보니 잘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노래방에 가면 항상 첫 곡으로 자신 있게 뽑는다. 그럼 사람들이 노래 잘한다 혹은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좋다며 칭찬해 준다. 그리곤 술 마시며 엉덩이를 방실방실 흔들다 남은 시간을 때우면 시간이 술술 절로 흘러가게 .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지만 나는 나름 인기가 많았다. 학교에서 오빠야들의 귀여움과 동기생들의 귀엽다함을 많이 받았었다. 예뻐서 인기가 많았던 게 아니라 귀여워서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았다. -ㅅ-

내 볼에 뽀뽀를 하고 도망가는 동기생이 있기도 했고, 선배들은 늘 밥과 술을 사주고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그러던 중 한 학번 선배가 나를 참 예뻐해 줬는데, 그땐 이미 대구한의대 ROTC 오빠를 사귀고 있을 때였다. 이 선배 고향은 전라도 여수였는데, 전라도 남자랑 경상도 여자랑 궁합이 잘 맞다는 얘기가 있다. 오해하지 말자! 속궁합 말고 일상적인 궁합 말이다. 그래서인지 선배의 유머가 웃겨선지 나는 선배 말 한마디에 꺄르르 꺄르르 웃어 넘어가곤 했다. 선배는 그렇게 나를 재미있게 하다 이듬해 바로 군입대하였고, 입대 후에도 나에게 편지를 보내며 관심을 표해왔다. 


대구(경산)-진주 간의 거리는 ROTC 오빠와 나를 주말 커플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오빠가 내게 기념일마다 반지와 목걸이, 기타 선물을 사주기 위해 주말 알바를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만남의 횟수는 줄어들어갔다. 처음엔 나에게 헌신적이던 오빠가 나중엔 본인 일과와 주말 알바 그리고 학업까지 할 일이 많아지자 스스로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거기다 내가 선배들과 어울리며 놀기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전라도 선배에게 웃음으로 호응해주는 내 모습도 꽤 거슬렸나 보다.


나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무슨 생각인지 ROTC 오빠는 소개팅에 대타로 나갔다. 그곳에서 만난 '보라'라는 신입생이 오빠를 맘에 들어했다.  여자는 소개팅을 기점으로 오빠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부할 곳이 없다며 오빠가 없는 빈집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장면을 내가 서프라이즈로 나타나 오빠를 놀라게 해주려다 목격을 해버렸고 난 그날 오빠에게 이별을 고했다.


몇 년 뒤, 메일을 정리하다 오빠가 보낸 메일 한통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전라도 선배)을 바라보는 나를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것과 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은 갈수록 커지는데 도통 곁을 내어주지 않는 듯한 내 마음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은 소개팅이었단 이야기였다. 나를 잊으면 '보라'라는 여자아이와의 만남도 바로 정리할 거란 이야기와 그 외 기타 등등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장문의 메일이었다.

그렇게 오빠도 나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겉으로 이별은 고한건 나였지만, 먼저 마음을 접은건 오빠였다. 항상 나만 바라보았고, 나만 생각하던 배려심 깊은 오빠였기에 나에게로 향하던 오빠 마음이 떠난 자리가 주는 공허함은 굉장했다.


그냥..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오빠의 잠든 모습이 기억난다. 이마라인부터 눈썹과 눈, 속눈썹 가닥가닥, 코, 입술, 뺨, 귀, 잡티 하나까지 하나씩 세세하게 뜯어본 적이 있다. 왠지 언젠가는 이 얼굴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서. 하나씩 뜯으며 기억 속에 새긴 얼굴은 아직도 내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기억은 추억과 달라서 세월 따라 점점 흐려지겠지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나의 옛 빙구야!

미안한데, 마누라랑 너무 알콩달콩 잘 살지는 마라! 그럼 나 배가  아플 것 같다.   -너의 옛 띠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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