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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Oct 10. 2020

어디쯤이 가장 좋을까?

과거 현재 미래

당신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만약 아니라면 어느 때로 간다면 잘 살 것 같나요?


이따금씩 엄마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곤 한다.

"내가 네 나이만 되어도 얼마든지 인생을 자유롭게 새로 살아갈 수 있을 거다. 그땐 내가 아무것도 몰랐 주위에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바보처럼 살았지. 넌 내가 이끌어주는데도 어째서 바보처럼 사니!"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죽었다 다시 사는 인생이에요. 그래서 아무 욕심 없어요. 다만 내 나이가 아직 서른넷이라는게 끔찍해요. 빨리 늙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 안에 이야기가 많았으면 해. 내가 원하는 건 단지 그것 하나뿐이에요.."


중3 기말고사를 앞두고 2002년 월드컵 응원이 열띠게 울려 퍼지던 그때였다. 친구와 저녁 늦게 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때늦은 저녁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청초한 별이 있는가 하면 불그스름한 별도 보였다. 과학시간에 배우길 붉은 별은 대체로 늙은 별이라고 했다. 나는 반짝이는 별보다 붉은 별에 눈길이 더 갔다. 왠지 그 별은 수없이 많은 세월의 시간 끝에 '후회'라는 단어는 갖고 있지 않을 듯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붉은 별처럼 수백 억년 이상의 삶을 살다 보면 후회 같은 건 별의미가 없음을 알고 조금은 자유롭고 조금은 느긋한 인생을 즐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한량처럼 내 팔자 연(緣) 닿는 대로 물 흐르듯 사는 게 좋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이 내 좌우명이다. 사람들 눈에는 내가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나이가 젊어지면, 인생을 다시 살면 잘 살 것 같지? 아니! 그건 착각이다. 여유가 있음을 느낄 때 인간은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나태와 권태는 곧 후회를 낳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늙어진다고 잘 사리란 보장도 없다. 폐지를 주우러 다닐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난 기꺼이 늙을 것이다. 많이 실패해도 좋고 (마음이) 많이 아파도 좋다. 그저 풍성한 나무처럼 달고 맛있는 단단한 과육들을 가득 맺어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근데 왠지 난 잘 될 것 같다. 인생 지랄 총량의 법칙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 어디쯤이 가장 좋을까?

모두에게는 그리운 왕년도 있을 테고, 모두가 그리는 미래도 있을 텐데. 사람들의 어디쯤이 가장 좋을까?


난 나의 미래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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