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모국어 문자해득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머리가 명석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 문맹률 또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실질문맹이란 문자의 실질적인 소통력이 없는 문자해득력을 말한다. 우리 국민은 글자를 읽고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잘 모른다니 최고의 문자를 가지고 높은 문맹률이라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멀쩡하게 책을 읽고, 메일과 문자를 주고 받고, 계약서를 체결하고, 보험약관에 동의하고, 판결문을 낭독하고, 담화문을 발표하지만 그 내용을 읽고 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는 줄 착각하거나 아는 척할 뿐이라는 것이다. 매사에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으니 사후에 개인적인 분쟁과 사회적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문맹자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니 대처가 가능하지만 실질 문맹자는 겉으로는 아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하니 그 불통의 피해는 더 큰 것이다.
코로나가 난무하는 비상시기에 한가하게 문맹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요즈음의 화두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이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까지 제대로 소통되는지는 의문이다. 괜히 시시콜콜 따진다고 하겠지만 언어의 의미를 아는 것과 잘 모르는 것은 그 소통력에서 차이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절박한 사회적 호소를 잘못 해석하거나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우선 ‘사회적’이란 말이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니다. 거기에 공동체적, 집단적, 조직적, 관계적, 상호보완적, 심지어 사회주의적인 의미까지 가지고 있다면 이를 대중적 구호로 삼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다. 이 구호를 만든 사람의 의도를 생각건대 ‘사회적 거리’란 사회의 물리적, 형식적, 집단적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는 떨어지되 마음으로는 가까이하라는 말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교회에서 형식적으로 모이지는 않더라도 심정적으로는 얼마든지 집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에는 나가지 않더라도, 학교에는 모이지 않더라도, 시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모임에 나가지 않더라도 감성적으로, 실질적으로 첨단매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만약 이 말이 영어 Social distance를 번역한 것이라면 '닭을 두고 봉황을 말한 것'이라서 얼굴이 화끈거릴 일이다. 그러나 설령 그 의도가 '천박한 닭'이었다 하더라도 정부에서는 '고귀한 봉황'으로 살렸어야 했다.
이러한 구호의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었더라면 코로나 대처가 좀더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모이지 않더라도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종교도, 자영업자도, 중소기업도, 대형매장, 시장도 이렇게 초토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말은 쉽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사회와 거리를 두라는 것은 매우 무리한 요구였다. 사회적으로 격리시키겠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과 인권을 빼앗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정부에서 이 말을 내세우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말이었는지 좀더 신중히 생각했어야 했다. 이 구호를 내세울 때부터 이러한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코로나 퇴치를 위한 부득이한 수단이었다 해도 정부에서는 그 극약처방에 대한 막중한 통치적 부담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래서 그 의미와 불가피성을 충분히 소통될 수 있도록 좀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울러 그 와중에서도 인정적, 심리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의도를 충분히 강조했더라면 우리 사회의 충격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차라리 그런 어려운 말을 내세우지 말든가-
그러나 중국의 강압적 통제나 서구의 방만한 방식을 생각하면 우리의 코로나 대처방식은 매우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지만 우리의 코로나 대처방식은 국제적으로 모범사례로 인정받고 있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현정부의 통치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선거철에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과거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비하면 기억할 만한 역사가 될 것이다.
아무튼 ‘사회적 거리두기’란 어려운 말은 대국민 캠페인 구호로써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구호란 알기 쉽고 설득력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깊고 어려운 뜻을 소통시킬 자신이 없다면 보다 쉬운 말로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왜 우리는 글자도 많고 의미도 복잡한 말을 내세워 국민을 불통, 불편하게 할까? 알기 쉽게 ‘모이지 않기’라고 하면 그 소통력은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어차피 ‘사회적 거리 두기’로는 교회의 예배와 학원의 수업마저도 막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알기 쉬운 고유어를 제쳐놓고 어려운 한자나 영어를 사용해서 실질 문맹을 높이는 짓을 자주 한다. 한자는 가르치지 않고 한자어만 우리말로 적으니-'사회적 거리'처럼- 음으로는 알되 그 본래의 의미는 모르는 실질문맹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언어의 기능은 소통력이라는 사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