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결혼식

작은 결혼식은 새로운 미풍양속의 시작이다.

by 김성수

나는 이르지 않은 결혼에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서 장남이자 독신의 형편이었지만 애 낳는 것도 서두를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즈음은 만혼, 비혼의 풍조가 성행하다 보니 애들의 결혼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벌써 손자가 학교에 다니는 일이 흔한데 나는 겨우 아들 결혼식을 치러야 할 형편이었다. 처음 해 보는 혼주라서 당연히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 글 ‘상부상조’에서 밝힌 희망대로 '작은 결혼식'을 실천하기로 작정했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고, 글 쓰는 사람들의 허위와 위선을 줄이는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였다. 이 ‘작은 결혼식’이야기는 그냥 희망사항이 아니라, 절실한 체험담이다.


'작은 결혼식'이란 간소한 결혼식이다. 요즈음 가끔 화제에 오르기도 하지만 2년도 넘은 당시만 해도 작은 결혼식은 아직 별난 짓이었다. 인륜의 대사라고 하는 결혼식을 누가 작고 초라하게 치르고 싶을까? 혼주야 제 멋대로이지만 결혼 당사자야 날벼락 같은 일이다. 부모의 별난 욕심에 자식이야 멀쩡한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 속도위반한 것도 아니고, 숨겨놓은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노총각, 노처녀까지 들인 부조금이 얼마인데 작은 결혼식이라니- 영문도 모르는 사돈이야 더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애써 대학원까지 가르친 내 딸이 어디가 어때서 초라하게 시집 보내야 할까? 사위가 얼마나 잘나서- 나도 생각이 없을 수 없다. 그동안 들어간 부조금이 얼마인데- 못 돼도 수백만 원은 넘을 것이고, 이참에 그 계를 타면 수천만 원은 너끈할 텐데-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이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서로가 부담주고, 서로가 원망하는 상부상원相負相怨의 병폐는 그칠 수 없다는 주제넘은 생각이 더 컸다. 그러면서 자꾸 따라다니는 푸념은 ‘지가 뭔데’였다. 당치도 않게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닐까? 잘난 척 한번 하자고 막대한 손해를 봐야 할까? 그러면서도 사회의 관습에 따르지 않는 돌출행동을 남들이 곱게 보아 줄까? 그러나 그때마다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라는 다짐을 하였다. 상부상조를 품앗이라 하여 미풍양속으로 정당화하는 사회풍조이지만 우리의 품앗이는 이미 미풍양속을 넘어 사회의 깊은 병폐가 된 현실을 나라도 과감히 거부하고 싶었다. 들어올 돈 수천만 원을 생각하지 말고, 들어간 돈 수백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일도 아니다. 남들에게는 오만과 객기로 보이겠지만, 더러는 남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나 혼자만 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물론 아내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애들은 얼마 안 가 고맙게도 부모의 턱없는 요구를 받아 들였다. 사돈도 이 무리한 요청을 수긍해 주었다. 다행히 예식 장소는 동생이 주임신부님으로 있는 작은 성당으로 정해져서 예식장 비용 일체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구태여 교회가 아니더라도 정원을 가진 식당이나 적당한 야외공간을 지역사회의 협조를 받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간소한 결혼예물과 혼수품 예단 일체를 없애니 이백여만 원으로도 충분했다. 하객도 애들 절친하고, 내 사촌까지만 알렸다. 어차피 부조금을 일체 받지 않을 것이니 그럴 바에야 구태여 재직 중에 자식 결혼식을 해서 직장 동료들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퇴임 전에 서둘러 밀어내기 결혼을 시킨다는 구설을 듣느니 차라리 조금 늦추어 정년퇴임 후에 날을 잡았다. 손해 보는 짓이라고 하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의 부담을 덜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더 컸다. 소박한 뷔페를 부르니 부자는 아니지만 부조금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친척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정중히 부조금을 사양하였다. 남들이야 빈말일 수 있지만 가까운 친척들이야 부조를 받지 않으면 진정으로 서운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들어간 돈이 없는데 친척이라고 부조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부조란 능력이 달리니 부득이 남의 도움을 받는 행위이다. 내 형편이 이백만 원 때문에 가까운 친척에게 부조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한 시간이 넘는 천주교 예식에 때를 넘기고서도 중간에 자리를 뜨는 하객은 없었다. 정말 진지하게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줄 사람만 온 것이다. 눈도장 찍고, 봉투만 전하고 나서 식권을 받아들고 서둘러 식당으로 가서 끼니라도 챙겨가는 호화 예식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진지함과 진실함이 가득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았겠지만 끝까지 진심을 다하는 하객이 그렇게 고맙고 소중할 수 없었다. 처음 혼주가 되어 일반 예식장과 단순비교는 할 수 없어도 큰 결혼식에서는 이런 순수한 감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큰 결혼식에서는 정말 큰일을 치르는 부담과 큰 일을 치렀다는 안도감에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계를 탔으니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는 부조금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앞으로 부조금을 안 내도 된다는 계산이 아니라 적어도 부조금의 멍에에서는 한결 자유로울 것이란 생각이었다. 노인으로 살다 보면 잊기도 자주 하고, 부조금의 빚도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노년의 부담이 적지 않다고 한다는데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예식이 길어졌지만 짤막한 혼주의 인사가 없을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오늘 이 초라한 결혼식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눈에 보이는 여러분의 기쁜 얼굴은 어떤 부조금보다 값진 것입니다.
오늘 신랑 신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고, 속도위반도 없었습니다.
다만 부모의 무리한 명령을 받아들인 것 뿐입니다.
사돈께서는 정말 깊은 사랑과 양보를 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혼주는 행복하고, 신랑 신부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저희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짧은 인사말이었지만 박수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몇몇 하객들은 정말 좋은 결혼식이었다고- 이렇게 감동적인 결혼식은 보지 못했다고- 나도 이렇게 해 보아야 하겠다고- 애들도 매우 행복했다고, 친구들한테 칭찬받았다고 좋아하였다. 사돈한테도 마찬가지였으니 이번의 작은 결혼식은 대성공이었다. 작은 결혼식을 기꺼이 수용한 애들에게는 신혼집을 사는 데에 적잖은 보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신혼여행도 보내지 못해서 작년에는 애들 데리고 신혼, 만혼여행도 같이 다녀왔다. 물론 경비는 작은결혼식으로 절약한 돈이었다. 아직 나이 먹은 딸이 남았지만 만약 결혼을 한다면 그 애도 작은 결혼식을 거절할 것 같지는 않다.


나중에 친구나 아는 사람에게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대개는 다분히 예의였을 것이고, 더러는 무언의 지지와 칭찬을 받은 것 같다. '작은 결혼식'을 심정적으로는 지지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이다. 왜 하필 나부터 손해를 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실행을 어렵게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부터 손해를 감수하고, 조금씩 생각을 바꾼다면 머잖아 새로운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는 아직도 정년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라는 명분으로 일정기간 강의를 더 할 수 있는 전관예우의 관행이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이러한 관행은 미덕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르치는 즐거움'을 과감히 포기했다. 실제로 그런 결단을 실천하는 분들도 있으니 나도 동참 해서 새로운 기풍을 정착시키는 데에 일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관행이라 해서 잘못을 따른다면 우리 사회에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랜만에 솔직한 심정을 글로 털어 놓으니 자랑 같아서 멋쩍기도 하다. 더러는 객쩍은 짓이라고 탓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저지른 작은 결혼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한 친구 친지들에게 긴 설명을 하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그런 오해가 풀렸으면 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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