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

근래의 상부상조 풍조는 전통의 미풍양속이 아니다.

by 김성수

상부상조는 아름다운 우리 사회의 전통문화였다. 그러나 요즈음의 冠婚喪祭관혼상제에서의 상부상조 문화는 미풍양속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옛날에는 능력껏 성의표시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지금은 능력과는 상관없이 관습화 된 액수가 정해져 있어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부조가 되지 못할뿐더러 아예 안 하니만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관혼상제는 서로가 부담을 주는 불상사가 되고 말았다. 청첩장은 노골적인 고지서가 된 지 오래이니 그것을 받아 들고 기뻐할 사람은 많지않다. 그런 형편이니 기쁜 마음으로 예식장을 찾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십중팔구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일 것이다.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들로부터 무슨 축복을 받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것이며, 무슨 애도를 받아 명복을 기대할 것인가? 세상인심을 탄식하기 전에 청첩장과 부고장을 남발하여 물질적, 심리적 부담을 안겨준 자신을 먼저 탓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도 남에게 부조했으므로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다짐한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상부상조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니 관혼상제를 빚 받을 좋은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참에 그동안 피 같이 들어갔던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작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관혼상제가 생기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무차별로 통지한다. 이럴 땐 옷깃만 스쳐도 당연히 인연이라고 확신한다. 이 정도라면 상부상조가 아니라 돈 빌려주고 돈 찾아오는 相貸相還상대상환-이른바 계 타는 날이다. 일이 끝나면 부조자 명단을 일일이 확인하여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지만 내심 기대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없거나 내가 부조했던 액수보다 적다면 서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역시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애경사를 인간관계의 멀고 가까움과 그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는 호기로 삼는다. 방명록을 확인하는 순간 감동과 위안도 얻지만 배신감과 서운함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수도 있다. 봉투 속 몇 푼의 고마운 부조금은 새로운 빚이 되고, 명단에 없는 친구는 가까이 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마땅하다. 오래 살다 보면 깜빡 잊을 수도 있고, 바쁠 수도 있고, 형편이 어려울 수도 있고, 잠시 서운할 수도 있는 법이다. 빚은 갚으면 된다지만 가까웠던 사이가 한 번의 실수나 착오로 멀어진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달사고도 있고, 방명록 정리과정에서 누락과 착오도 생기고, 심지어는 봉투 도난사고도 있을 수 있다.그런데 단 한 번의 착오로 인간관계가 어긋난다면 상부상조는커녕 빚과 서운함만 쌓이고, 돈은 돈대로 들고, 오해는 오해대로 쌓이는 相負相怨상부상원이 되고 만다.


애경사에 찾아오는 손님과 화환, 꽃다발은 혼주나 상주의 인간성과 사회적 지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손님이 줄을 서고, 화환 늘어놓을 공간이 부족하면 성공한 사람이요, 그렇지 못하면 덕이 없거나 변변치 못한 사람이다. 물론 자연스럽게 그럴 수도 있지만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각별히 교제에 유의하여 손님과 화환을 관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기야 이러한 노력들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회 문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은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풍조는 막중한 물질적, 정신적 부담을 주는 허례허식이다. 정말 순수한 인간의 정을 주고받던 본래의 상부상조 문화와는 달리 지금은 위장된 부조와, 허세와, 철저한 거래와, 예리한 이해타산이 가득하다.


과도한 부조금은 웬만한 봉급쟁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액수여서 애경사 통지서는 세금고지서보다 더 무섭다. 세금이야 탈세도 하고, 감세도 되지만 부조금은 빠져나갈 구멍도, 에누리도, 융통성도 없다. 그러니 그것은 이미 서로 기쁨주고 칭찬받는 상부상조가 아니라 서로 걱정주고 근심 받는 相憂相患상우상환이 된 지 오래이다. 권력자나 공직자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힘 있을 때, 현직에 있을 때 애경사를 서둘러 치르는 것이다. 권력과 현직이 없어지면 많은 부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조는 죽을 때까지 물어야 하지만 권력이 없어지면 받기 힘들어지니 상부상조는 시한부 마일리지이다. 허례허식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 특권층, 상류층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야 하건만 그들이 오히려 폐습을 선도하고 있다.


이렇게 부담을 주는 상부상조이지만 막상 애경사의 당사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금전적인 도움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혼인 경우 기본이 5만 원이라면 대접해야 할 식단은 그것을 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러니 최소한 10만 원은 해야 하는데 그런 부담으로는 서민들로서는 감당해 내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손님은 손님대로 부담이고, 주인은 주인대로 실속이 없다. 그래서 요즈음은 결혼식장에 가서 비용을 축내기보다는 계좌이체해서 축의금을 전달하는 것이 진정으로 혼주를 돕는 길이다. 청첩장을 돌려 부담을 주고, 하객으로 가서 역시 부담을 준다면 차라리 서로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상대방을 돕고, 아끼고, 존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럴 정도라면 이는 보존해야 할 전통이 아니라 청산해야 할 인습이다.


상례는 어쩔 수 없더라도 혼례는 기를 쓰고 널리 알리려 하지 말고, 정말 알리지 않으면 안 될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혼식을 구태여 호화롭게 해서 큰돈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작은 결혼식’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기에 공감하는 국민이 8할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못하는 것은 묵은 관례를 깨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타산도 작동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넓게 생각하면 부조를 받아도 결국은 빚이다. 나부터 손해를 무릅쓰고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요란스럽게 큰일을 치르는 가운데에 서로 간의 정도 두터워지기도 하지만 서로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요즘 같은 허례허식의 병폐는 일찍이 없었던 신풍속도라는 사실을 안다면 구태여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라고 강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소에 가깝게 생각했던 사람이 부조가 없었다고 해서 서운해할 일도 아니다. 어쩌면 내가 먼저 결례를 했었는지도 모르고, 기억해야 할 빚이 없게 된 것도 좋은 일이다. 애경사를 알리지 않으면 서운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알리지 않았다고 애써 서운해하는 사람 치고 속으로는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잠깐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을 모른 척하지 말 일이다.


<대한민국 누구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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