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장례는 삶까지도 아름답게 한다.
경망스런 생각인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까 보다는 어떻게 죽을까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 삼십 년은 터무니없는 욕심이고, 늘 잡아 평균연령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아직 십여 년 남은 지금부터라도 사는 일보다는 죽는 일에 더 열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죽는 일도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면 특별히 생각할 것도 없겠지만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노인들을 보면 나라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이따금 길에서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던 은퇴한 교장선생님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70 중반을 갓 넘은 나이도 그렇지만 문상조차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분의 아름답고 작은 장례였습니다.
그분은 암 수술을 한 지 이미 15년이 넘어서 안심해도 되었는데 결국 그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여한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내가 들은 그분의 장례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우선 시신기증을 했다는 데에 놀랐습니다. 나는 일찌감치 장기기증서는 가지고 다니지만 아직 시신기증까지는 결심하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것도 아니고,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 시신을 지켜내야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내 주검이 실습실에서 난도질을 당해도 괜찮다는 각오는 아직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습용으로 기증받은 시신은 흔하다지만 대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경우라고 합니다.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시신을 기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그분이 바로 그 어려운 일을 실천한 분이셨구나라는 생각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그분은 빈소를 차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장례라는 것은 고작 병원 성당에서 치른 영결미사가 전부였고, 즉시 그 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했으니 빈소를 차릴 일도 없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신이 없더라도 빈소는 꼭 차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젖어있습니다. 장례 한 번 치르자고 생업을 제쳐두고 3년을 묘지를 지키고, 빚내는 것으로는 모자라 몸까지 팔아서 성대한 장례를 치르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한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문화였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사실 최소 3일 이상의 장례식장의 영결로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상주나 문상객으로서는 그마저도 번거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몰라도 문상만은 거르지 않는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입니다. 그러나 문상을 하지 못해서 진심으로 서운한 사람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결례를 하고 싶지 않은 의무감으로 빈소를 찾기 마련입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살아생전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다가 죽어서까지 귀찮게 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일 것 같습니다. 내가 죽었다고 진심으로 문상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문상객이 와서 통곡을 하고, 충심으로 명복을 빌어준다고 이미 죽은 자의 저승길이 달라질까? 마지막까지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나중에 ‘그 친구 죽었어?’라는 약간의 아쉬움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마지막 덕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원한을 많이 사고, 빚이 많고,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사람이 많다면 하필 죽음을 널리 알릴까 싶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나도 생각했었지만 아예 빈소를 생략할 것까지는 들어보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때가 되면, 아니면 때가 되어도 죽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르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조용히 삶을 마치는 것이 더 깨끗한 죽음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 정도였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웃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나 자신도 허접하게 웃어넘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나의 얕은 생각을 뛰어넘어 훨씬 좋은 방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흔히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빈소를 요란하게 꾸미는 것은 이 말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입니다. 빈 손으로 간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운 폐를 끼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죽어서 세상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자신이 있다면 빈소를 3일만으로 차려서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보다 더 값진 이름을 남길 사람도 많지 않다면 대개의 빈소는 과다한 욕심이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살아생전에 덕망을 쌓지 못했다면, 그래서 빈소를 찾아 줄 문상객이 많지 않다면 자신에게나 자식에게 초라하고 부끄러운 빈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문상꾼을 돈 주고 사 오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성대한 장례식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허세와 분수에 넘치는 장례가 죽은 사람에게 무슨 영예가 될까 싶습니다. 알고 보면 요란한 장례나 호화분묘는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상주에게나 좋을 일일 것 같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빈소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곳일 것 같습니다. 국장이나 사회장을 치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애도한다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까지 구태여 그것을 따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부모의 장례에 최고의 성의와 애도를 해야 자식 된 도리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가는 부모로서는 자식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빈소에 찾아오는 문상객에게 부조금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죽어서도 문상객을 배려하는 그 뜻이야 좋았지만 상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니 아예 문상객도, 자식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마지막 선행일 것 같습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흙에서 나와서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만고의 진리일진대 하필 그렇게 법석을 떨어야 할까 싶습니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아니면 아무래도 마지막 가는 길을 그렇게 초라하게 떠나고 싶지 않다고 고집하면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 평범한 사실을 알지 못했었는데 그분은 귀한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분이야말로 빈소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깊은 애도를 받을 자격이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신기증이라고 하지만 그분은 하느님한테 받은 몸이니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린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무덤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차피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갔는데 무덤을 만들어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앞으로는 무덤을 보살필 사람도 마땅찮고, 그마저도 시한부 보존이 될 것을- 그런데 생전에 모진 업을 쌓은 사람이 화환이 둘러싸인 장례식장에서 끝까지 호사를 누리고, 호화분묘를 널직이 차지하고서 허풍스럽게 빗돌을 세워놓는 일이 흔합니다. 거기에 생전에 쌓은 모진 업을 기록할 수는 없으니 호화로운 비문일수록 대개가 거짓투성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임수도 얼마 못 가서 덤불 속에 묻힐 것입니다. 아니 그러기도 전에 강제 철거당할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이름이 빛나는 사람은 드물고, 그런 사람만이 묘지와 비석을 가질 자격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돈과 지위가 있어, 자손을 잘 두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호화분묘와 비석을 꾸민다면 위법과 허장성세로 인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요란한 빈소나 호화로운 무덤으로 사람을 속이기보다는 그 돈으로는 기부로써 죗값을 치르는 것이 저승길에도 좋을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겸손의 작은 장례로 생전의 삶까지도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채 교장 선생님의 장례야말로 남은 사람에게는 모범을 보였고, 하느님께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삶을 마감하며
崔奇男 自輓詞 자작 영결사
살아서 콩물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生不飽菽水
죽어서 제사상을 받겠는가? 死何羅豆觴
술 한 잔도 다시 마시지 않으리니 一勺不復飮
한 점 고기인들 맛보겠는가? 一난那得嘗
한 번 도성문을 나서면 行出國都門
서릉이 영원한 내 집이라네. 永野西陵傍
숲에서 바람이 목메어 울고 林風咽悲響
산에 뜬 달빛은 근심인 것을 山月凝愁光
인생은 잠깐 부쳐진 것- 人間聊寄爾
저승이 영원한 내 고향일세. 九原眞我鄕
누가 해골의 즐거움을 알까? 誰知髑髏樂
천지는 저렇게 아득한 것을. 天地同未央
<우리시로 읽은 漢詩>에서
이 시는 조선의 학자 최기남이 미리 써 놓은 자신의 영결사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이 어려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