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 이름 하나에도 역사가 숨쉬고 있다.
강원도 화천에 가면 파로호(破虜湖)가 있다. 6․25때 오랑캐(虜)를 크게 무찔렀다(破)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우리는 북한군을 공산오랑캐라고 불렀다. 오랑캐란 원래 중국 동북지방에 있던 유목민 종족인 烏亮哈오량합인데 이를 현대 中國音으로 읽으면 대개 오랑캐에 가깝다. 그러므로 오랑캐의 어원은 중국어이며, 원래 중국 서북방에 살던 종족 이름이었다. 그래서 북에서 쳐들어온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했고, 북한군도 오랑캐라고 했지만 왜적이 쳐들어오면 오랑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족인 북한군까지도 오랑캐라고 한 것은 우리 역사의 아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때야 형편이 그럴 수도 있었지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다면 비극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파로호는 육이오 때 화천발전소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목숨이 죽어간 숭고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때 여기서 캐 낸 군번 인식표를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전사자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군번인식표란 병사가 자기의 군번을 새겨 몸에 지니는 얇고 작은 쇠 표지판이다. 호수 대부분이 군사작전지역이어서 사람들의 내왕이 많지 않지만 우리 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상류로 올라가면 파로호보다 더 유명한 평화의 댐이 있다. 이름은 평화의 댐이지만 그 내력을 보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서 거국적으로 벌인 일대 사기극의 결과물이다. 북한의 금강산 댐을 방류하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 댐을 쌓아야 한다고 해서 전 국민의 성금을 모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나라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 정권을 연장하려는 교활한 술책이었다. 4대강 사기의 선구였던 셈이다. 이러한 역사의 사기극이 세상에 알려지고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않는다'라는 말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평화의 댐이 사대강보다 나은 것은 실제로 물을 담지 않아 엄청난 환경파괴는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파로호와 평화의 댐은 같이 있지만 그 내력이나 역사적 의미는 전혀 다르다. 파로호는 조국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역사교훈의 현장이지만 평화의 댐은 그 이름과는 전혀 달리 평화를 해치려는 간악한 흉계가 펼쳐진 현장이다. 그런데 그 엄중한 역사적 의미를 후손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 역사의 죄인들이 반성은커녕 망언망동을 일삼고, 국가의 예우를 받으면서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은 이 땅에 올바른 역사의 정의가 없음을 입증하는 꼴이다. 우리의 역사정의는 언제나 바로 세워질 수 있을까? 평화의 댐과 파로호의 역사적 교훈을 새기지 않고 덮어두기 때문에 위정자들이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풀 한 포기, 흙 한 덩이가 소중한 역사적 교훈이 아닌 것이 없다. 다만 우리의 무감각이 이 소중한 교훈을 다 흘려버리는 것이다.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하다 보니 지나간 역사는 고사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시간이 해결한다고 하지만 지금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후세에 바른 평가를 기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역사의 바른 평가는 지금의 역사의식이 살아있을 때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현대사로 사필귀정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후손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역사의식을 살리기 위해서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역사유적을 보존하는 데에 힘을 쏟는 것이다. 고대 유물, 유적은 물론이고, 서대문형무소, 독림기념관, 한국전쟁기념관, 세월호 등 영욕의 역사현장을 보존함으로써 역사의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총독부를 철거함으로 해서 치욕의 역사를 잊으려 했지만 그렇게 해서 굴욕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역사의 현장이 없어짐으로 해서 후손에게 역사의식을 망각하게 할 염려가 크다.
요즈음 파로호의 이름을 가지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파로호는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으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발전소를 지켜낸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육이오의 비극을 보존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요, 역사적 교훈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70년 역사 이상의 역사적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한 파로호의 이름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이름을 바꾸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패전했고, 그 이름도 자기들이 혐오하는 오랑캐라고 했으니 좋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침략군을 무찌른 역사의 현장이니 그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호국의 역사를 지우는 것과 같다. 더 생각하면 그 오랑캐 때문에 통일을 하지 못한 한이 서린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의 뻔뻔스러운 요구를 들어 준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지켜낼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이다. 또한 남북화해 분위기에서 동족을 오랑캐라고 했으니 그다지 좋은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없앤다고 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름 하나 바꾸는 것이 대수냐라고도 하겠지만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과 역사의 교훈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것은 나라와 후손이 할 도리도 아니다. 비록 영광된 역사는 아니지만 치욕의 역사도 엄연히 보존해야 할 역사가 분명하다. 해방 직전에 일제가 댐을 쌓고 대붕호라고 했으니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는 의미가 있다고도 한다. 일제가 지어 준 이름이 70년의 피어린 역사의 교훈보다 더 중요하다면 더불어 같이 말할 상대가 아니다. 그 역사적 무감각이 참으로 한탄스럽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전개되는 적폐청산에 대해서 국론분열, 정치보복이라 하여 말들이 많다. 잘못된 일을 고치는데 부작용과 반대가 없을 수 없으니 어느 정도의 국론분열과 정치보복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정부에서 벌이는 개혁은 단순한 적폐청산이 아니라 ‘역사바로세우기’여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밝혀 바로 세우는 것은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 민족대계를 밝히는 일이다. 또 일부에서 적폐청산의 피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과업을 적폐청산이라는 속 좁은 구호를 내세워 본래의 명분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역사바로세우기’가 행여 일부에서 염려하는 대로 정치보복이나 정권유지의 수단에 그친다면 자신들도 그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