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언어

언어에는 우리의 의식이 들어 있다.

by 김성수

우리는 우리말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말을 잘 사용하지 못하여 소통을 어렵게 하고, 사리의 본질과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일이 많다.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국어이지만 알고 보면 국어를 오용 남용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그리고 국어의 오남용은 우리의 잘못된 인식,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생각의 문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어에는 우리의 의식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독립운동의 성지인 천안에는 항일독립 운동을 기리기 위한 독립기념관이 있는데 3.1절은 물론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오래 된 일이라 지금은 모두들 무심코 넘어가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이름은 정상이 아니다. 독립기념관이라 했으니 특히 외국 사람이 이름만 들어서는 1945년에 우리가 처음 독립한 신생국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나라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광복기념관으로 해야 옳을 것이다. 당시에도 그 이름의 부당성을 두고 말이 많았었는데 끝내 독립기념관으로 굳어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에도 친일파들의 세상이었으니 광복기념관이라고 하면 광복독립군이 연상될 것이 두려웠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이름 하나에도 우리의 의식 수준있다고 생각하면 역사적인 기념관 이름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못된 이름을 바꾸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하기야 이름을 바꾸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꿀 생각을 못하는 우리의 무의식이 문제이다. 쓸 데 없는 고집, 잘난 척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기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거기에 들어가면 나도 부끄러운 역사에 동참하는 것 같아서이다.


광복 후 새로 세운 이승만 정부를 건국이라고 규정한 건국절 파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해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규정한 것이 엄연한 헌법인데 근래 새삼스럽게 대통령들이 앞장서 이승만 정부 수립한 날을 건국절이라고 선언한 것은 建國이란 말의 뜻을 모른 무지의 소치이거나 친일파들의 유전자가 드러난 짓이다. 단군의 개천절을 건국이라고 믿어왔던 국민에게 갑자기 우리나라는 1948년에야 비로소 건국했다고 선언했으니 우리의 역사를 5천 년 뒤로 끌어내린 실로 어이없는 역사왜곡이다. 비록 단군신화를 역사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는 '나라'와 '정부'를 구분하지 못한 무지이다. 설령 지금의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규정하더라도 이승만 정부는 상해 임시정부를 이은 대한민국 역사 중에 일개 정부일 뿐이라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이승만 정부가 건국 정부라고 선언했으니 일개 무식자가 그랬다면 몰라도 대통령들이 그랬다면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상해 임시정부가 영토가 없다고 해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나라를 잃었던 쓰라린 역사를 가진 우리 국민이 차마 할 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건국절을 선언한 것은 독립항쟁의 상해 임시정부를 지워내고 친일파들의 매국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스스로 친일파였음을 인정한 짓과 다름없다. 일부에서는 보수층의 '빨갱이 색깔론'이나 진보층의 '친일파 색깔론'이 청산되어야 할 악습이라고 규정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는 이미 씨가 말랐고, 친일파는 아직도 가공할 세력으로 건국절을 정당화 하고 있는 판에 그런 주장은 일의 경중을 모른 소치이다. 건국절 선언 같은 엄청난 역사왜곡에 무관심하거나 물색 모르고 동조하거나 그것을 의미 없는 정쟁일 뿐이라고 점잖떠는 것은 민족과 나라의 정체성의 결여에서 나온 부끄러운 짓이다.


요즈음 새로 동학혁명이란 말도 들린다. 옛날 학교 다닐 때에는 동학란이라고 배웠는데 새로 동학혁명이라고 하니 매우 귀설은 말이다. 학정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한 민중들의 피맺힌 항거를 동학란이라고 가르친 것은 국민을 무시한 잔인하고 무지한 역사관이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동학혁명이라고 이름하는 것도 옳은 역사관은 아닐 것 같다. 혁명을 의거, 개혁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革命혁명이란 원래 ‘정당하게 새로운 나라나 세상을 만드는 역사’를 뜻한다. 그래서 역사에 실패한 반란은 혁명이라고 하지 않았으니 정당했던 동학항쟁도 성공하지 못했으므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4.19는 스스로 정부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정당한 이유로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으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촛불운동도 같은 이유로 촛불혁명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5.16은 군사 반란이었지만 새 정부를 세웠고, 나라의 경제기반을 다진 공로가 있으니 혁명의 정당성을 인정할 만하다. 5.18은 정당한 항쟁이었지만 새로운 정권을 세우지 못했으니 혁명이라고 하지 않는다.


코로나 비상시국에 정신 못 차린 젊은이들이 심야 클럽에 드나든 몰지각한 일탈을 언론이 앞장서서 ‘방문’이라고 보도하는 짓은 또 다른 언어의 일탈이다. 방문은 정당한 목적과 절차를 거쳐서 찾아가는 것이지 온 세계가 위기에 처한 엄중한 비상시국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둠을 틈타 향락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용할 단어는 아니다. 그들의 수치심을 배려하더라도 방문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일탈을 정당화 해서는 안 된다. 일부에서는 그들의 인권을 말하기도 하지만 철부지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지 않는다면 인도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세계가 위기에 빠져있는데도 일부 사이비 종교들의 분별없는 행동을 신앙의 자유라고 우기거나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를 언론의 자유라고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말한 것은 단어 몇 개의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문제의식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단어의 오남용은 언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음을 엄중히 생각해야 한다. 단어 몇 개를 고친다고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들이 치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어를 시정하기 전에 우리의 문제 의식을 고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단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보다 쉽게 우리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시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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