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마바흐체궁과 경복궁

돌마바흐체궁과 경복궁은 화려한 불꽃놀이었다.

by 김성수

돌마바흐체 궁전은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오스만터어키의 호화 궁전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세계를 호령했던 프랑스의 전성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자금성 역시 중국의 국력을 과시했던 세계적인 건축물이었듯이 돌마바흐체궁전도 터어키의 자랑일 수 있겠다. 실제로 그 화려함이나 규모가 동서양 대륙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터어키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한 마디씩 하는 말이 이 궁전을 지음으로 해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아 후손들을 먹고 살게 한다고 술탄을 칭송한다. 과연 오늘날 석유도 없이 척박한 터어키 땅에서 관광산업은 터어키 국민을 먹여살릴 만한 문화자원이다. 자연 관광자원이야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지만 소피아성당이나 돌마바흐체궁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후손에 대한 조상의 은덕이라 할 만하다. 그것을 건설하기 위하여 막대한 희생이 있어야 했지만 후손을 위해서라면 선조로서 그 정도야 감수할 수도 있을 법하다. 변변한 유적 관광자원이 아쉬운 우리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돌마바흐체가 지어졌던 시대를 생각하면 좀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다.


베르사이유궁이나 자금성은 당대 프랑스, 중국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건물로서 그 국력에 걸맞게 지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의 국력과 영광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돌마바흐체는 오스만제국이 서구열강에 밀려 쇠퇴기에 접어들어 그럴만한 국력이 없는 가운데에서 무리하게 지어졌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역사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역사의 흐름과 국력에 따랐다면 국민의 부담도 적었을 것이지만 당시의 형편이 그렇지 못했으니 국가재정 파탄과 막중한 국민의 희생을 요구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대역사는 쇠약해져 가는 오스만제국이 망국의 그림자를 허장성세로 감추어 보려는 술탄의 얄팍한 술책이었다. 화려한 대궁전의 건설로 국위를 빛내기는커녕 서구열강의 배려와 동정에 대한 보상을 해야 했으니 그 희생과 대가는 힘없고 불쌍한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속임수는 필연적으로 오스만제국의 멸망을 재촉하였고, 터어키를 패전과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돌마바흐체궁을 지은 술탄은 후손을 위한 공적을 칭송받을 것이 아니라 그 술책으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옳다. 국력에 걸맞게 베르사이유궁을 지은 루이14세도,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도 지나친 국력낭비를 지탄받는 판에 터무니없는 허세를 부려 나라를 망친 술탄에게 그러한 칭송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다.


남의 말을 하다 보니 우리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경복궁은 돌마바흐체궁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고, 그 시대적 배경도 닮은 데가 있어 흥미롭다. 경북궁을 재건하여 나라의 위엄을 세워보려는 정치적 의도도 비슷했고, 그 의도와는 달리 시대나 역사의 소명을 거슬러 망국을 재촉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서울의 경복궁도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지만 경복궁 중건에서 비롯된 재정파탄과 백성의 도탄이 망국의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 둘은 서로 닮았으니 역사의 교훈은 세계 도처에 깔려있다. 경복궁은 우리가 내세울 만한 자랑스러운 문화 역사 유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어둡고, 국민을 속이는 허장성세, 엄청난 토목공사로 벌어지는 재정파탄과 국력낭비, 국민생활의 피폐가 숨어있다. 그로 인하여 선조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아야 했고, 그 허장성세의 정치적 술책으로 필경은 나라를 망하게 했다면 지금의 경복궁은 마냥 자랑스럽기만한 유산은 아니다. 백성은 굶주리는데 허세에 빠진 통치자는 화려한 불꽃놀이나 즐긴 꼴이 아닐까? 유적의 아름다움과 관광자원에 열광하는 것도 좋지만 화려한 불꽃놀이에 숨어있는 숨어 있는 역사적인 교훈을 새겨보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일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뼈저린 교훈을 생각하지 못하고 술탄과 대원군의 업적이라고
칭송해 댄다면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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