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짐승에게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 만물의 척도요, 신의 대리자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인간만이 위대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짐승, 가축들을 보면, 더구나 곤충 미생물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틀림없는 사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세상을 떠나 아득한 우주를 생각하면 이러한 인간의 자부심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인간이 그렇다면 같은 생명체인 짐승, 가축들도 나름대로의 질서와 운명이 있지 않을까? 인간이란 기껏 그 구조의 맨 상위층에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것도 지구 상의 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질서라면 끝 모를 우주공간에서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디까지인가? 더구나 내세까지 있다고 한다면 인간만이 거기에 해당하고, 다른 생명체들은 아니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일부 종교에서 믿는 신탁(神託)만으로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서 하는 밀이다.
이규보는 <슬견설>에서 모든 사물을 똑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사물을 분별하여 정밀하게 가치를 내리는 일을 지혜라고 내세우지만 그 지혜라는 것이 사실은 편견이라는 것이다. 절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우주만물은 자연이라는 구조물의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멋대로 인간의 질서를 만들어 자만하고, 세상을 농단하고, 자연의 질서와 환경을 파괴해 온 것이다. 이 규보의 인생관이 맞다면 인간이 가져야 할 가치관과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 푸들은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운 강아지라서 이규보가 생각했던 개보다 더 보잘것없다. 유전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짐승은 유인원이지만 감정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개일 것이다. 만약에 불교 환생설이 맞다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衆生(중생)에서 짐승으로 변했다면 인간과 짐승은 원래 같은 것이다. 짐승은 나의 전생도 후생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아지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지 않는가? 요즈음은 개 팔자가 좋아져서 사람 이상의 대우를 받는 개도 많지만 정작 개를 인간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개 병원, 호텔은 물론 개 장례식장도 있다고 하지만 정작 개에게도 영혼이 있다거나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와 이를 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이규보의 주장도 개를 인간과 같이 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생각하기로는 불자로서의 자비심보다는 유가로서의 자부심과 오만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신하고, 인간만이 이성이 있고, 인간만이 영혼과 내세가 있다고 굳게 믿는 기독교적 가치관이라면 강아지란 아무리 융숭한 대접을 받더라도 인간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혹은 기르는 가축을 가족, 자식과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족, 자식을 내다 팔아 도살장에 보낼 리 없으니 그 말은 매우 위선적이다. 어쩌다 화물차에 실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들의 눈망울을 보노라면 착잡한 마음을 누를 길 없다. 쟤들과 나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금수, 짐승보다 나으니 사람이라고 했지만 일단 세상을 떠난다면 쟤들이나 나는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쟤들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고, 사람만 내세가 있는 것일까? 자연, 조물주는 모든 생명체는 버리고 오직 인간만 거두어 주는 것일까? 조물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사람이란 사람의 생각대로 세상의, 우주의 주인공일까? 그건 혹시 인간이 꾸며낸 탐욕적인 희망사항이 아닐까?
그러나 또 한 번 생각하면 그 특권으로 인간이 살아서는 무엇을 하며, 죽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짐승 가축들은 죽어서 인간에게 고기나 가죽을 제공해서 자연의 섭리를 지키지만 인간은 내세에 가기 위해서, 자연의 섭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짐승, 가축보다 무슨 일을 더하기에 절대자 앞에서 자신만을 구원해 달라고, 자신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독선하는 것인가?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지키기는커녕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 인간이 하는 짓을 보면 결국은 인류의 멸망을 자초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공룡은 멸종되었어도 지구는 남았지만 인간은 결국 지구조차 적막하게 식어버린 한 개의 행성으로 만들지 모른다. 근래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태양계의 위성들은 지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신의 경고가 아닐까? 인간이란 참으로 염치없고, 뻔뻔하고, 어리석은 생물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무모하게 자만하면서 다른 생물들을 우습게 안다. 더구나 불교의 윤회설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내가 어찌 사람이며, 어찌 저 짐승이 내가 아니랴? 결국에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닐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