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민주시민의 양식을 먹고 산다.
길고양이가 주차장에 있는 차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해서 주민이 119에 신고했다. 구조대가 긴급 출동해서 보니 정작 차주가 없으니 마음대로 차를 열 수 없고, 고양이도 구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주에 연락하니 당장 올 수 없다고 하니 구조대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119 긴급구조대가 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일견 동물사랑도, 재산권 보호도, 긴급구조대의 활약도 저런 세심한 곳에까지 미치고 있다니 미담 같이 들리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아직도 보신탕을 먹는다면 정말 야만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그 시간에 정말 긴급사태가 벌어지면 어찌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소방서 긴급구조대가 잠자러 차 안에 들어간 길고양이나 구조하러, 배수구에 빠진 틀니나 찾아주려고, 집안에 들어온 물뱀이나 대신 잡아 주려고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럴 여유만만한 나라 형편이라면 좋겠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는 소방관인 현실이라면 이는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신고를 하는 한가한 주민에게 동물사랑이 지극한 수준 높은 시민이라고 칭찬해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런 신고에 출동해서 언제 올 줄 모르는 차주를 기다리고 있는 한가한 구조대를 운영할 정도로 우리 정부가 부자는 아니다. 불법주차된 승용차가 소방도로를 막아 불을 끄지 못하게 하는 재산까지 보호해 주어야 한다면 잘못된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차라리 국력의 낭비요, 세금의 낭비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 말하면 가치관의 착오거나 일의 경중을 모르는 처사들이 아닐까?
이런 착오와 답답한 일들이 어찌 길고양이와 119 문제에 그치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뭣이 중헌디?’를 모르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기주의는 물론이고, 개인주의도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민주주의, 자유, 인권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민주주의 특권이라고 믿는 자유, 인권이 공공의 이익과 행복에 어긋나는 일이 매우 흔하다. 그러나 어떤 자유도, 인권도 다수의 이익과 행복에 우선하지 못한다. 만약에 개인의 자유, 인권이 공공의 이익과 행복을 해친다면 바람직한 민주주의일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주인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을 좌절시키는 부동산 투기, 국민을 분열시키는 가짜뉴스, 악플, 집단이기주의에 제약을 하자면 자유와 인권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전체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개인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그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체제 개념이고, 개인주의는 의식구조 개념이라서 그 범주가 다른 용어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곧 자유와 개인주의와 통하고, 그것은 곧 이기주의도 용납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다. 물론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겹칠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은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과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전체주의나 사회주의가 국가가 주인이라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점에서 또 다르다. 전통적으로 왕권체제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는 근대에 서구에서 들어온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일시에 거기에 경도되었지만 아직 그 사회체제에 익숙하지 못한 형편이다. 서구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정착되기까지에는 피어린 희생과 오랜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아직 짧다. 그래서 지금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처럼, 자유와 개인주의가 곧 민주주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정착하는 데에는 먼저 민주시민 의식과 역량이 먼저 갖추어져야 할 것인데 우리에게 그럴 자신이 있는지 냉철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시민의 양식과 역량이란 나보다 남과 사회를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양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오랫동안 봉건주의 체제에 익숙해 있다가 일시에 민주사회 체제와 사상을 받아들이다 보니 우리는 아직 남과 사회를 배려할 여유가 부족한 듯하다. 일본, 미국에 대하여 과도한 콤플렉스를 갖거나 자존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남과 사회를 배려할 줄 아는 그들의 시민의식을 배워야 할 것이다. 중국이라고 무서워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도 못한 그들의 시민의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이 주인이라는 시민의식이 없으면 개인의 행복도, 사회의 민주주의도 이루어질 수 없다.
고양이 구출 소동을 보면서 아직은 우리의 민주시민 의식과 양식이 덜 익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사건은 공공의 이익, 행복 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동물보호와 사랑도 좋지만 길고양이가 차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해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동물을 사랑하는 품격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의 경중을 모르는 철부지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시민의 신고라 해도 차 안에서 따뜻한 엔진 열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를 구출하기 위해서 무작정 차주를 기다린다면 자신의 본분을 잘 모르는 공무원일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보고서도 미담이나 재미있는 소동으로 넘긴다면 우리는 아직 '고양이 민주주의'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