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언론과 무책임한 표현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는 이룰 수 없는 이상세계에 가깝다. 단 둘인 부부간에도 서로 주인이 되기 어려운데 하물며 수천만의 평범한 국민들이 모두 주인이 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거니 옛날의 왕권주의나 전체주의보다는 훨씬 좋은 것은 틀림없으니 우리는 그래도 민주주의를 희망으로 삼고 사는 것이다. 혹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와 대척적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달고 사니 민주주의가 숫제 동네 강아지가 되었다. 그러니 강아지 이름만 불러댈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연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자질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소양과 자질, 이른바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치인이란 본질적으로 반민주주의자들이다. 국민이 주인이 된다면 그야말로 정치인은 국민의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처럼 종이 되고 싶은 정치인은 없으니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란 입에 달린 거짓말이기 십상이다. 정말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우선 국민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시민의식이다. 국민이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하면 정치인들은 항상 국민을 기만하여 군림할 생각만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라는 자부심이 높지만 정치인과 언론의 술수에 속지 않는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비로소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해방 전까지 우리 역사에 민주주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기껏 70년이 넘는다. 그나마 삼십 년의 군사독재 시대엔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되었으니 그 시대를 민주주의라고 자부하기 어렵다. 국민이 선거로 정부를 만들었던 시대라 해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도 아닌 걸 생각해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말이 70년이지 그 안에는 헛나이가 많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그간의 정부나 통치자를 기준으로 말하면 그렇다.
통치자는 본질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차라리 적으로 생각한다. 언론만 통제할 수 있으면 통치자 입맛대로 국정을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 낸 것은 국민들의 깨어있는 시민의식이었다. 그러나 시민의식은 언론이나 여론이 바르지 않으면 깨어있기 어렵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였다고 말하지만 차라리 그 시대는 언론이 살아있던 시대였다. 먹고 살기는 어려웠지만 우리의 시민의식은 그때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독재 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요즈음의 언론을 보면 자유당 때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때에는 언론이 민주주의, 국민의 편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권력이나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시민의식을 마비시키고, 나라를 위험하게 하고 있다. 바르지 못한 언론세력이 언론의 자유를 빙자하여 사회를 오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어용언론이나 가짜뉴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언론들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자는 것인지, 나라의 이익과 발전에 훼방을 놓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언론은 사회의 목탁은커녕 나라의 장래와 민주주의를 망치는 흉기가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자부하는 것은 착각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언론이 公的인 公論이라면 표현은 사적인 감정에 해당할 수 있다. 개인의 권익과 의사표현까지 존중한다는 것은 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된다. 그러나 사회의 공론인 언론의 자유마저도 만만치 않은 것을 생각하면 개인의 감정적인 의사표현의 자유는 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사적인 의사가 공공의 질서나 이익에 심각하게 이반할 경우에는 허용할 수 없는 자유이다. 지금 언론의 자유가 점차 확대되어 가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당연히 민주주의에서 환영할 일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입장인 표현의 자유가 사회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기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익보다는 모든 국민이 잘 사는 것이 이상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도 일정한 제약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의 자유라고 해서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아니면 말고 인신공격이나 악플이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법천지가 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이지만 타락한 언론과 무책임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지금처럼 언론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던 시대도 없었지만 지금처럼 나라를 심각하게 분열시키던 시대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교활한 언론들은 말끝마다 민주주의라는 호랑이를 업고 나서니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사술이다. 여우는 언론의 자유라는 성벽에 기생하고, 생쥐는 표현의 자유라는 사당(祠堂)에 구멍을 파고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으니 이른바 성호사서(城狐社鼠)의 교활한 자들이다. 이들에게 국민이 속아서는 민주주의라는 성채와 사당이 통째로 위험하게 된다.
*성호사서(城狐社鼠)
성호는 성벽에 구멍을 파고 숨어 사는 여우. 성이 무너지기 전에는 안전이 보장된다. 城은 언론의 자유이고, 여우는 간교한 언론사들이다. 사서는 사당 안에 숨어 사는 생쥐. 사당, 절, 교회는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않으므로 안전이 보장된다. 사당은 표현의 자유. 생쥐는 입으로만 나발대는 기자, 국회의원, 무책임한 댓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