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 있다는 사회체제의 개념이고, 자본주의는 모든 가치의 기준이 재산에 있다는 경제구조의 개념으로 분류기준이 전혀 다른 것이므로 혼동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상대개념은 전체주의나 왕권주의이고, 자본주의의 상대개념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면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체주의를 무너뜨린 것이 민주주의이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 사회주의라면 전체주의와 자본주의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다. 다만 민주주의는 승리가 분명해졌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아직도 혼전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구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이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했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하거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소멸되었다고 말하면 경솔한 짓이다. 사실은 원래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수용한 수정자본주의로 발전하였고,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경제를 원용한 사회주의로 여전히 맞서고 있다. 그 전형을 북유럽 제국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견고하지 못하고, 자본주의는 아직 수정이 덜 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자본주의와 동류로 말하거나 사회주의와는 상반되는 것처럼 목청을 높이는 짓은 무지이거나 기만일 것이다.
우리가 혐오하는 유물론(唯物論)의 상대개념은 유신론(唯神論)이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자신하는 자본주의는 물신(物神)주의로 오히려 유물론에 가깝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자처하면서 유물론을 비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타락한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와 혼동한다면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짓이다. 그런데 기득권층이나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일이 많다. 사유재산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을 민주주의의 본질이요,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체임을 말한 것이지 사유재산을 보장하자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유물론에서는 공평한 재산의 분배를 추구하는데 우리의 자본주의가 가진 자의 불공정한 사유재산권을 보장해 주는 데에 급급하다면 사회주의만도 못한 짓이다. 심지어는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재산마저 지금까지 사유재산으로 보호해 주는 것은 몰역사적이며, 민주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전 국민의 1%도 안 되는 소수가 국부(國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불공평한 구조를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거나 그 모순을 개선하고자 한다고 해서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몰아부친다면 무지한 적반하장이다.
지금 온 나라가 집값 파동에 흔들리고 있는데 그것은 일부 투기꾼들이 아파트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값 파동의 주범인 투기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불로소득을 환수하자는데 마치 당장 공산주의 세상이 오거나 민주주의가 망하는 것처럼 선동하고 있으니 혹세무민이다. 가진 자야 정당방위일지 모르지만 그 피해자인 집 없는 서민들마저 물색 모르고 이들의 선동에 덩달아 부화뇌동한다면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물론 억울한 다주택 소유자도 있고, 정부의 서툰 정책으로 당장 집값이 잡히지 않더라도 투기라는 망국병을 고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무능한 정부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탐욕스러운 기득권과 다수의 서민층이 각성하지 않는 한 이런 혼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정당하게 소유한 사유재산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당한 노력이 아니라 부정이나 투기로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국가경제의 정상적인 흐름을 그르친다면 민주주의 자체를 위험하게 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타락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횡행한다면 차라리 사회주의만도 못할 수 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된 이유이다. 그런 처지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막무가내 몰아부칠 정당성은 없다. 국민이 스스로 알아서 경제유통을 조절할 수 없다면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능정부이거나 타락한 자본주의 정권이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서라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당연한 일로 인식하는 사회풍토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득 없는 국민을 구제할 수 있다. 힘써 일하면 부자가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힘써 일하는데도 먹고 살기가 어렵다든지, 일할 자리마저 없다면 잘못된 사회가 틀림없다. 적어도 놀고 먹어도 부자가 되고, 젖먹이가 부동산의 수유주가 되고, 탐욕스러운 투기꾼이 성실한 근로자를 비웃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더 바란다면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회의 행복을 위해서는 개인의 손해와 희생도 감내할 수 있는 민주시민 의식이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소수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수의 생존권이 짓밟히는 것은 천박한 자본부의이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걸핏하면 민주주의를 내세워 막무가내 사회주의, 빨갱이라고 매도하기 전에 그들이 왜 생겨야 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