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낙천은 노년의 행복을 보장한다.
흔히 말하기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하늘의 뜻대로,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태도를 낙천적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길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려가는 것도 아닐 것이고, 하늘의 뜻이나 자연의 섭리가 내 뜻대로 되어가는 것은 아니지요. 그보다는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더구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젊은 시절에는 순조롭지 못한 일이 훨씬 많습니다. 험난한 세상에 긍정적, 낙천적 사고에 젖어있으면 현실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생각만으로는 뜻을 이루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그럴 여유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치열한 삶의 일선에서 물러난 노년에는 긍정적, 낙천적 태도를 가져도 좋을 여유가 있어 좋습니다. 행복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긍정과 낙천 속에 있다고 하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라면 지금부터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젊은 시절의 부정적, 비관적 긴장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해야 할 일보다 안 해도 될 일이 더 많고, 지킬 의무보다는 누릴 권리가 더 많습니다. 공부도, 입시도, 병역의무도, 취업도, 살벌한 경쟁과 생계 활동도, 자식 양육도, 운이 좋으면 부모 봉양도 필요 없게 됩니다. 먹고 살 일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행복한 노년을 즐길 일만 남아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면 근심 걱정 속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설령 노년이 불편하고, 불만스럽더라도 그럴 날이 얼마 안 남았고, 책임질 일도 적으니 행복은 몰라도 긍정적으로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위나 명예 지킬 걱정, 재산 불릴 걱정, 건강 지킬 걱정, 자식 걱정, 오래 살 걱정, 죽을 걱정에다가 죽은 후 산 사람 걱정까지 하게 된다면 행복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권위와 명예는 내려놓으면 되고, 재물이 많으면 베풀면 되고, 적으면 적은 대로 만족하면 되고, 자식이야 제 인생이고, 건강장수는 목표 나이를 짧게 잡으면 걱정할 일이 없지 않을까? 어차피 노년까지 살아남았다면, 평균수명까지만 살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족한 일입니다. 그 이상 것들에 집착할수록 여생이 편치 않거나 불행해질 것입니다.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면 긍정적, 낙천적인 사고를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건강마저 좋게 하여 무병장수는 덤으로 따라올 것입니다. 내가 긍정적이면 세상도 긍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세상이 긍정적이면 아름다워지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매사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정적이라서 행복은 반감됩니다. 노년을 깔끔하게 산다면 인생이 아름답지만 노년이 지저분하면 일생이 추해지는 법입니다. 천국이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는 것처럼 어렵다고 하지만 佛家에서는 지금, 여기, 내 마음이 바로 극락도 되고, 지옥도 된다고 하니 더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평범한 말이지만 지금, 여기, 나에 만족하는 安分知足안분지족은 노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보증수표입니다. 젊은이가 안분지족을 추구한다면 게으름과 무기력일지 모르지만 노년에 이를 때까지 아직도 청운을 꿈꾸고 있다면 죽을 때까지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분수를 알고 지금에 만족할 줄 안다면 행복이 거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다다를 수 없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지금에서 그칠 줄만 알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새가 아무리 하늘을 높이 날아올라도 나뭇가지 하나로 안식처로 충분하고, 바다가 술이라도 한 잔 술이면 취하는 법입니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은 탐욕입니다. 생각해 보면 욕심만 줄일 수 있다면 노년에 행복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도 가장 행복한 노년은 아마도 의연한 죽음을 맞는 일일 것 같습니다. 해탈이나 聖人의 경지는 바랄 수 없더라도 죽음에 떳떳하고, 의연하게 맞을 수만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늙음은 나를 한가롭게 하고, 죽음은 편안히 쉬게 해 준다’면 늙고, 죽는다는 것이 그렇게 무섭고 서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늙음과 죽음의 두려움을 합리화하고 자위하는 변명인지는 몰라도 늘그막에 회춘을 바라고, 무병장수하기에 동분서주하는 것보다는 훨씬 노년다워 보입니다. 어차피 그 탐욕은 이루어지기 어렵고, 또 그리 된다면 사회의 불행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더구나 죽은 후에 또 다른 내세가 있다고 믿는다면 무병장수에 골몰하기보다는 의연하고 떳떳한 죽음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노년은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