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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7

꽃에 취한 술의 노래

by 김성수

對花漫吟대화만음 鄭澈


꽃은 무르익어 홍작약이 되고, 花殘紅芍藥

사내는 영글어서 정돈녕이 되었네. 人老鄭敦寧◉대우

꽃을 앞에 두고, 술잔을 잡거들랑 對花兼對酒

마땅히 취하여 깨지 말지어다. 宜醉不宜醒◎압운

<우리시로 읽는 한시>

1,2구는 비유된 전제이고, 3,4구는 현실의 진경(眞景)이니 한시의 전형적인 전후(前後)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기발한 詩想으로 낭만에 찬 풍류와 재치가 넘치는 시입니다. 시어의 배열도 순조로워 번역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그 재치와 위트를 옮겨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옛날이야 이런 시로 호탕한 풍류를 과시할 수 있었지만 요즈음으로 말하면 女權모독이나 성희롱에 해당할 내용이라 소개하기조차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옛사람들의 풍류스러운 멋으로 이해한다면 이것 또한 우리들의 멋과 여유가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팍팍한 코로나 세상에 한시 한 편으로 잠시나마 삶에 대한 긍정적 사고로 긍지와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가치있는 일이겠지요. 송강의 시를 너무 많이 소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한시를 남긴 시인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이 많아서입니다.

花화殘잔紅홍芍작藥약 人인老로鄭정敦돈寧녕.

여기에서 花는 꽃이 아니라 정철이 사랑하던 여인입니다. 그러니 殘은 시든 꽃이 아니라 원숙한 여인이지요. 홍작약은 기명일 것이고, 정철은 왕가의 인척이라 정 돈녕이었습니다. 돈녕은 왕가의 인척에게 내리는 벼슬이었습니다. 만약에 殘을 ‘시들다’ ‘잔해’라고 옮기고, 老를 ‘늙은이’라고 옮기면 풍류스러운 분위기가 갑자기 적막강산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殘을 ‘무르익어’ 老를 ‘영글어서’라고 해서 원숙한 풍류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殘도, 老도 슬프거나 서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두 구(句)는 통사구조로 보아서 교묘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 두 구는 음의 고저장단도 철저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이런 대구를 한시에서는 대우(對偶)라고 합니다. 보통 4행시에서는 대우가 없지만 이 시는 최고의 수사수단을 갖추고 있어 더 돋보입니다. 그러므로 번역할 때에도 이 대우를 살려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꽃과 맞서게 함으로 해서 멋진 풍류의 詩境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어(詩語)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 중의 진수는 홍작약이요, 사람으로 말하면 鄭敦寧이 최고의 풍류남이라는 것이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보다는 ‘사내’가 미인과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기발한 시상을 중의(重意)와 절묘한 대우(對偶)로 표현한 솜씨기 돋보입니다. ‘꽃은 무르익어 홍작약이 되고, 사내는 영글어서 정돈녕이 되었네’


對대花화兼겸對대酒주

미인을 곁에 놓고서 술을 마시는 것은 호기 있는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진짜 풍류인이라면 꽃과 술을 즐기고 마셔서 인사불성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객기를 부리는 장면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對花를 ‘꽃을 대하고’, 對酒를 ‘술을 대하고’라고 하면 번역은 충실했는지 모르지만 시는 아닙니다. 적어도 ‘꽃을 앞에 두고, 술잔을 잡거들랑’정도는 되어야 풍류 넘치는 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꽃을 옆에 끼고, 술잔을 잡거들랑’이라고 한다면 풍류가 아니라 성희롱으로 몰릴지 모릅니다. 결국 풍류남 정돈녕과 마주앉은 것은 꽃미인 홍작약이니 풍류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 여인의 성이 洪씨였다면 말할 것도 없구요. 정철은 유명한 호주가, 술고래였습니다. 그래서 선조가 특별히 술잔을 주어 그 잔으로 딱 한 잔만 마시라고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호주가 이태백은 일찍이 ‘술잔을 헛되이 달 구경 시키지 말고(莫使金樽空對月), 한번 술잔을 잡았으며 삼백 잔은 마셔야지(會須一飮三百盃)’라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宜의醉취不불宜의醒성.

宜는 마땅히, 당연히. 醉는 취하다. 물론 글자로는 ‘술에 취하다’이지만 여인에 취하는 것은 더 멋진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태여 우리말로 옮겨 여성들의 불만을 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不宜는 해서는 안 된다. 금지의 말로 옮겨야 합니다. 醒은 깨다, 정신 차리다. 宜가 두 자이지만 한 번만 옮기면 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의지여야 합니다. 그래서 ‘마땅히 취하여 깨지 말지어다.’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꽃에 취한 술의 노래’가 되어 구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술꾼들이 취중에 있었던 불미스러웠던 모든 일에 대해서 ‘내탓’이 아닌 ‘술탓’으로 돌리는 수단은 모든 잘못을 술에 떠넘기는 멀쩡한 핑계입니다. 정철을 漢詩로 논의하는 일은 드물지만 그의 漢詩를 보면 그가 가사와 시조의 대가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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