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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y 01. 2021

칠순의 언행 2

나이 들수록 말은 줄여야 한다.

  흔히 말을 잘하는 기술을 궁리하지만 그보다는 말을 않는 법을 공부해야 옳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古稀(고희)란 稀言(희언), 말을 ‘적게’하라‘는 뜻이 아닐까? 말을 배우는 데에는 6년도 안 걸리지만 말을 않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말을 않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라면 노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말을 좀 할 줄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니 노년에 이르러서도 말을 많이 한다면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어법을 지키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할 말을 많이 하는가, 안 할 말을 많이 하는가? 안 할 말을 하거나 안 해도 될 말을 하려면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이 말을 잘 하는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할 말을 한 것이 法語(법어)이고, 그것을 줄인 것이 禪語(선어)이고, 선어마저 번거로워 無語(무어)라고 했고, 그것은 不立文字(불립문자), 곧 침묵의 경지이다. 莊子(장자)도 ‘아는 자는 말을 않고, 말을 하는 자는 모르는 것’이라고 했고, 孟子(맹자)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말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역설적인 극단론이어서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말을 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옳고 그름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건 젊을 때의 사정이지, 노년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늙으면 기운은 떨어지고 입만 살게 된다. 그래서 나오는 잔소리는 대표적인 노화현상 중의 하나이다. 잔소리란 한 마디로 ‘안 해도 되는 말’이다. 시어머니는 노파심(老婆心)으로 며느리가 걱정되어하는 말이지만 며느리한테는 지겨운 잔소리로 들린다. 할머니는 집안에서나 그러지만 할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그 잔소리를 해대니 그 폐해가 더 크다. 노인이야 세상 걱정, 애들 걱정을 한다지만 젊은이한테는 노인네 잔소리만큼 듣기 싫은 것은 없는 법이다. 잔소리하는 심리를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의 언어능력에 대한 불안의식의 표현이요, 상대방에 대한 불신감이 드러난 것이다. 좋은 말도 여러 번 하면 듣기 싫은 법인데 터무니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고서 존중받기 바란다면 딱한 일이다.   

  입(口)은 말하라고 생긴 것이 아니라 음식이 들어가는 入口(입구)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생각을 말로 실현하는 혀 舌자도 본래는 입에 들어온 음식을 맛보는 소화기관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그러니까 입과 혀는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신체기관이지, 말을 하는 것이 본래의 임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라.’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말라.’라는 말처럼 삼가고 조심해야 할 것이 ‘말하는 입’이다.  옛말에 病從口入(병종구입) 禍從口出(화종구출)-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모든 사단은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舌(설)의 본분을 잊고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는 구설수를 타기 십상이다. 혀는 세치 물렁살에 불과하지만 어떤 칼보다 예리해서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죽고 상하게 하는 흉기이다. 그것은 자루 없는 칼과 같아서 언제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지 모른다. 요즈음 유행하는 내로남불을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책임질 생각이 없는 것이고, 책임질 사람은 말을 삼가는 법이다.

  입바른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듣기 좋은 말도 자주 하면 싫은 법이다. 좋은 말도 하기 어려운 판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이 흉기를 조심스럽게 단도리해야 한다. 이제는 失言실언의 과오를 되돌릴 기회마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해야 할 말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다. 세치 혀를 놀려 천하를 농단한 솜씨를 과시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말재주로 해서 패가망신한 사람이 더 많다. 사실 말은 입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천 마디 말보다 진실한 눈빛 한 줄기가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언변을 닦기 전에 생각과 마음을 바로 해야 하고, 수양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으로 노년을 지키는 것이 낫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화려한 언변, 듣기 좋은 말은 銀은이 아니라 毒독이 되기 십상이다. 舌禍(설화), 筆禍(필화)를 입는 일이 그렇게 많은 세상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銀은을 탐할 것이 아니라 침묵의 金금을 지켜 잠자코 듣는 일에 열중할 일이다. 말을 잘해도 화를 피하기 어려운 세상에 말솜씨가 서투른 노인네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말로써 말 많은 말을 그만두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입단속만 잘해도 인생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노인들은 입만 살아서 말 자랑을 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기 마련이지만 입이 무거운 노인야말로 품위와 위엄이 있어 보인다. 타고난 언변을 자랑할 게 아니라 눌변을 다행으로 알아야 노년이 편안하다. 말로 이익을 거둔 적보다는 손해를 본 일이 훨씬 많았던 인생의 경험을 살리는 것이 그나마 노년을  지켜내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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