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그대에게
贈醉客증취객 李梅窓이매창(1573-1610)
취김에 소매 잡지 말아요. 醉客執羅衫
손길에 소매 찢어져요. 羅衫隨手裂◎
소매야 찢어져도 아깝지 않지만 不惜羅衫裂
사랑마저 끊어질까 그게 무서워요. 但恐恩情絶◎
이 시는 작중화자가 일방적으로 서술하는 독백체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한시의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치와 위트로 간절한 애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羅衫을 꼬리 이어가며 반복하고, 手裂과 衫裂을 중복시키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선 여인이 남자에게 말하는 것이므로 여성적 목소리를 살려내야 합니다. 桂娘이라고도 하는 이매창은 황진이보다 덜 알려진 기녀 출신의 시인이지만 한시에서는 오히려 황진이를 능가하는 작품량과 솜씨를 보였습니다. 필자의 안목으로는 여류 漢詩人으로 가장 뛰어납니다.
醉취客객執집羅라衫삼.
‘취객이 소매를 잡았다’라고 한다면 이 시는 황량해집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주정뱅이의 폭력입니다. 이 시는 서정적 자아가 직접 고백하는 화법으로 번역해야 詩境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客을 과감히 빼고, ‘취김’이라고 하면 취객이라는 의미도 살아있고, 소매를 잡은 취객이 주정뱅이가 아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情人이라는 사실까지 전달됩니다. 원시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않지만 ‘취김’에는 나를 잡지 말아달라는 말과 나를 사랑해 달라는 모순의 詩意가 숨어있습니다. 원시의 글자에 얽매여서는 이러한 오묘한 詩想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취김에 소매 잡지 말아요’라고 옮겼습니다. ‘나를 잡지 말라’가 아니라 ‘취김이 아니라 진실한 애정으로 나를 잡아달라’는 간절한 소원이 드러나야 합니다. 羅衫도 원래 ‘비단소매’이지만 구태여 비단을 밝혀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옷감이 아니라 나의 신체라는 사실만 밝히면 충분합니다. 여기에서 연결어미를 사용해야 하지만 독백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결어미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취객이 소매를 잡으니’라고 번역하는 것과 비교해 보세요.
羅나衫삼隨수手수裂열.
羅衫은 소매, 裂은 ‘찢어지다’입니다. 앞 구의 羅衫을 다시 반복한 것은 중복이라기보다는 강조의 효과가 더 큽니다. 手를 앞으로 올리는 것이 시의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隨는 따르다. 이를 결합하여 ‘손길’이라고 하면 두 자를 모두 반영한 시어가 됩니다. 종결어미도 여성의 목소리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간절한 여인의 사랑이 독백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손길에 소매 찢어져요.’라고 옮겼습니다. ‘소매가 손따라 찢어지네’라고 하면 시도, 산문도 아닙니다. 그동안 이런 한시 번역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번역으로는 漢詩의 매력을 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不불惜석羅라衫삼裂열.
不惜은 ‘아깝지 않다’ ‘상관없다’입니다. 소매가 찢어지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함으로 해서 님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과시해야 합니다. 어쩌면 소매가 찢어질 정도로 강렬한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의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不惜과 裂을 강렬한 시어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소매에 ‘야’라는 보조사를 붙이면 더 詩意가 살겠지요. 그래서 ‘소매야 찢어져도 아깝지 않지만’이라고 해 보았습니다.
但단恐공恩은情정絶절.
但恐은 ‘다만 걱정될 뿐’. 이것을 서술어로 삼되 ‘다만 무서울 뿐’이라고 해도 무난합니다. 그러나 但을 대신하여 ‘그게’라는 지시어를 보완하면 사랑을 애원하는 詩想이 더욱 간절해지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원시에 얽매어 '다만'을 고집한다면 오히려 원시를 살리지 못할 것입니다. 恩情은 ‘은혜와 정’이지만 ‘사랑’으로 옮기고, 여기에 ‘마저’라는 조사를 덧붙이면 사랑의 간절함이 더 짙어질 것입니다. 絶-끊어지다- 도 실상이 아닌 가정의 상황이므로 ‘끊어질까봐’라는 어미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종결어미는 여전히 여성적 목소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랑마저 끊어질까 그게 무서워요.’와 ‘다만 사랑이 끊어질까 두렵네’와 비교해 본다면 많은 차이를 느낄 것입니다. 마지막 구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여인은 취객이 절대로 싫은 상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가 술에 취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흠뻑 취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취한 그대에게’라고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번역도 있어 참고할 만합니다.
술 취하신 날 사정없이 끌어당겨
끝내는 비단저고리 찢어놓았지요.
비단저고리 아까워 그러는 게 아니라
맺은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