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줄이면 후회도 적다.
사람이란 본래 부족함이 많고, 모자라다 보니 잘못이 많고, 그러다 보니 후회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후회는 적을수록 좋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이 후회이다. 그렇다고 후회가 적은 것이 좋다고 할 수도 없다. 후회가 없다면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것이니 양심이 없거나 우둔한 사람일 수도 있다. 싸이코패스는 후회도 할 줄 모른다. 그러나 후회가 많다고 좋은 일도 아니다. 그만큼 잘못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후회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모순적인 딜레마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은 젊은 시절에는 후회가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요, 후회가 많으면 그럴수록 잘못을 줄일 수 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지만 ‘젊어 후회’도 그렇다. 후회가 없다면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회는 소중한 인생경험이요, 양심이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나이가 들수록 당연히 살 날이 많지 않다. 이제는 과오를 시정하고, 용서 받고, 화해하고, 나아가 젊은이의 모범이 되어야 할 나이에 후회만 하고 있다면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후회가 아무리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적어도 죽을 때에는 후회 없이 죽고 싶다. 그래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감하고,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칠순을 맞은 지금도 후회스러운 일이 그렇게 많으니 나에게 ‘후회 없이 죽기’란 이루기 어려운 목표일 것 같다. 예순을 넘어서는 이순(耳順)이라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후회하는 일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정년할 때까지는 후회할 일을 줄였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일생 중 이때가 가장 후회스러웠던 시기였다. 군대에서는 말년을 조심하라고 했듯이 직장의 말년을 조심해야 했는데 나는 거꾸로 멋있게 마감하려고 하였다. 직장은 군대가 아니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것이 후회 없이 내 본분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돈이나 권력 대신에 명예만은 확실히 챙겨야 한다는 욕심이 앞섰다. 젊었을 때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지만 나름 경륜을 쌓다보니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 그동안의 성취에 대해서 감사하고 겸손하는 대신에 기회만 있으면 과시하고, 척하기를 좋아하였다. 교육자로서, 학자로서 겸손은 중요한 덕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내 능력을, 권위를, 수범적 위치를 확실히 매겨야 한다는 허세가 앞섰다. 그것은 하찮은 명예욕이 아니라 내 본분을 다하고, 이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교만이었고, 그 교만은 욕심을 불렀고, 욕심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설령 그 욕심이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치명적인 손실이었고, 그것은 나의 말년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에 가장 위험한 짓을 저질렀으니 나는 크게 어리석은 자였다. 그것도 훨씬 나중에야 깨달은 일이지 그때는 내가 하는 짓이 두고두고 후회할 짓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 날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후회는 줄여야 한다. 앞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설령 그르지 않더라도 후회할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壽則多辱(수즉다욕)-오래 살수록 욕이라고 했으니 오래 살면 후회도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래 살기를 바라기보다는 죽을 때까지 후회를 줄이려는 노력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이제는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후회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그것이 의욕, 의지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노욕, 노탐일 뿐이다. 인생은 칠십부터- 실컷 노년- 노익장(老益壯)- 백 년 인생- 이런 허접스러운 말들에 더 이상 어두워지는 귀를 기울이고 싶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 색욕, 재물욕, 권세욕은 극복할 수 있어도 명예욕, 건강장수욕은 버리기 어렵다. 그래도 명예욕은 사회에 긍정적인 면이 있으므로 나쁘지만은 않다. 명예는 사회적인 공감을 얻어야 얻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곧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 사회에 도움이 되거나 죽어서도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목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령화시대에 무병장수욕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서 노욕이 틀림없다. 생존권을 내세워 끝까지 이런 노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후회하는 지각도 없이 죽어야 한다. 그야말로 오래 사는 것이 치욕이다.
후회 없는 인생은 있을 수 없겠지만 칠순 정도가 되면 후회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명예욕을 줄이는 일 같다. 옛날에는 학문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몇 권의 저술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명예욕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언젠가는 학계에 공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당찮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욕심에 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꼰대스러운 글을 넉살좋게 여러 사람에게 내세우고 있으니 명예욕이란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굴레가 틀림없다. 그래도 염치없는 희망을 가져 본다. 글쎄- 십 년 정도 더 살다보면 이 굴레에서 어지간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더 살아야 한다는 구차한 명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