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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pr 21. 2021

칠순의 언행 1

나이 들수록 말을 삼가자.

  얼마 전에 오랜만에 선배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본래 건강체질이 아니었는데다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 보였다. 가슴이 섬찟할 정도였으니 나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얼핏 생각나는 대로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신다고 했더니 금세 표정이 더 안 좋아 보였다. 그제서야 내가 말을 잘 못했구나 싶었다. 내심으로는 가까운 사이이니 입에 발린 헛인사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막상 건강을 잃어버린 당사자로서는 위로는커녕 병의 심각성을 확인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건강이 안 좋은 노인한테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후회가 새삼스러웠다. 나이가 칠십이라면서 더 늙은이 심정 하나 살피지 못하고 아픈 곳에 못질을 했으니 나잇값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분은 나를 안 만났더라면, 나는 그냥 노인들한테 하는 인사치레나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마음에 없더라도 최소한 ‘여전하시네요-’ 아니면 최소한 ‘건강하시죠?’라고 할 것을-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원한을 사고, 서운하게 하고, 마음 불편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나마 오늘처럼 바로 말 실수를 깨달았다면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살다 보면 그런 잘못마저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은 더 많을 것이다. 말 한 마디 잘못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아프게 한다면 이제는 그런 잘못을 돌이키거나 용서받을 기회조차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이를 먹걸랑 모름지기 애초에 말을 삼갈 줄 알아야 나잇값을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교통법규 이외에는 이제 범법, 위법을 저지르는 잘못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법이란 최소한의 제한일 뿐, 능동적인 덕행이나 善(선)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사회의 역량이나 활동이 줄어든 지금은 법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기보다는 신중한 언행으로 남의 마음을 편안하고 풍족하게 해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은 나이 먹어서 자주 할 짓은 아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물질적, 정신적인 능력 없더라도 말로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좋을 일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일삼아 그런 칭찬과 언행을 터득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화술을 연구하  노력도 좋겠지만 남의 처지에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든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특별한 말솜씨가 없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데에는 화술이 진심을 따라가지 못한다. 구태여 밖에까지 나가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에게부터 그런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가족이니까, 가장 가까운 사이이니까 그런 예의와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이 나이에 남한테 아무리 잘한들 마누라한테 점수를 잃으면 당장 숙식이 위험해질 것이 뻔하다. 마누라의 채점표에만 신경쓰지 말고, 진정으로 가족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이야 쉽지만 아내에게 인정을 받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집안살림부터 차고나서야 할 판이지만 아직은 당장 그럴 기초체력과 기본실력이 부족하다. 그러니 우선 말로 저지르는 실수부터 줄여나가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

  '사자후'(獅子吼)는 부처님의 설법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 설법이 얼마나 권위가 있었으면 ‘사자의 외침’이라고 했을까? 그래서 지금도 열변을 토하는 웅변을 사자후라고 한다. 그런데 하동사자후(河東獅子吼)란 말도 있다. 중국의 柳宗元(유종원)은 명망 있는 정치가요, 문장가요, 시인이지만 마누라 호통에는 꼼짝 못하는 공처가였다. 그가 마누라의 잔소리를 ‘사자후’라고 무서워했다니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남자들은 우리보다 불행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 남자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변변치도 못한 주제에 아직도 마누라 앞에서 사자처럼 행동한다면 크게 위험한 일이다. 이빨 빠진 사자는 고양이 앞에서도 눈치를 살펴가며 행동거지를 삼가야 한다. 특히 고양이 눈 밑에 잔주름이 늘었다면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황제 네로보다 더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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