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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우리시로읽으세요 10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by 김성수

配所輓妻喪배소처만상 金正喜김정희(1786-1856)

어이하면 월하노인에 호소하여 那將月老訟冥司◎

내세에는 부부를 바꾸어 달래나? 來世夫妻易地爲◎

내가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서 我死君生千里外

찢어지는 이 아픔을 알게 할거나? 使君知我此心悲◎압운

<우리시로 읽는 漢詩>


이 시는 작자가 제주도 유배 중에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평이하지만 재치있고, 절실하게 독백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시에 여자가 남자를 애모하는 내용은 많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 작품도 아내의 특수한 신분과 임종도 하지 못한 처지여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그냥 묵혀두기에는 참 아까운 작품이라서 소개합니다. 秋史로 더 유명한 김정희는 역대 최고의 서예가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那나將장月월老로訟송冥명司사.

那는 의문사로 ‘어떻게 하면’이지만 시어로서는 ‘어이하면’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將은 장차, 앞으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將을 구태여 우리말로 옮기는 것보다는 다음 구 ‘달래나?’에 미래의지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月老는 月下老人(월하노인)의 준말로 세상의 모든 남녀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중매전담 신을 말합니다. 訟은 ‘소송을 걸다’ ‘억울함을 호소하다’. 冥司는 저승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인데 월하노인이 저승에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으므로 구태여 번역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입니다. ‘어이하면 월하노인에 호소하여’

來내世세夫부妻처易역地지爲위.

來世는 저승, 다음 세상이고, 爲는 ‘바꾸다’라는 易에 투영되어있으므로 생략해도 좋습니다. 爲는 ‘하다’이지만 易-바꾸다의 보조사에 불과합니다. 1구의 那가 의문사인데 여기까지 이어지므로 ‘바꾸어 달래나?’라고 해서 의문 종결사로 맺어야 합니다. 易地는 입장, 처지가 바뀌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라는 말이지요. 夫妻를 바꾼다는 말은 내세에서는 부부 남녀의 위치를 바꾸어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처’보다는 ‘부부’라는 말을 더 많이 쓰므로 부부라고 했습니다. ‘내세에는 부부를 바꾸어 달래나?’

我아死사君군生생千천里리外외.

君은 아내를 높여 부른 말입니다. 지금은 연하의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옛날에는 광범위한 호칭으로 여자도 君이라고 불렀습니다. 生은 死의 대립어로 살려야 합니다. 我死君生은 ‘내가 죽고, 당신은 살아’. 千里外는 내세의 환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작자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는 중에 부인이 죽은 사실을 말합니다. ‘내가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서’면 목숨을 바꾼 지극한 사랑으로 처지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使사君군知지我아此차心심悲비.

使君知는 ‘그대에게 알게 하여’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럴 수 없으니 月老에게 호소한다는 말 속에 아내에 대한 애정이 간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我는 ‘나의’, 此는 ‘이’, 心悲는 ‘슬픈 마음’입니다만 ‘아픈 마음’이 더 슬플 것 같습니다. 지금 그대가 죽고 내가 이렇게 고통이 크니, 내세에는 거꾸로 내가 죽고 당신이 멀리서 임종도 못하는 이 엄청난 고통을 알게 하고 싶다는 절절한 심경입니다. 이렇게 소박하고 평이한 시어로도 충분히 생명을 초월한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야말로 죽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인 것입니다. 끝의 구는 평서문이지만 의문문으로 바꾸면 詩境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어이하면)찢어지는 이 아픔을 알게 할거나?’. 첫 구의 ‘어이 하면’이 여기까지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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