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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에 대하여

주름살은 나이테이다.

by 김성수

나이가 드니 눈에 띄게 느는 것이 얼굴에 잡히는 주름살이다. 깜빡이나 건망증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주름살처럼 늙음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주름살은 옛날이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지금은 주름살 제거수술로 세월의 흔적을 지워낼 수도 있다. 그래봐야 잠시 보기에는 좋겠지만 어차피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그런 수선은 부질없는 짓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면 ‘주름’이란 말은 그렇게 싫어만 할 일이 아니었다.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세상을 ‘주름잡다’라고 하면 일거에 살맛나는 말이 된다. 천하를 주름잡지는 못하더라도 가장으로서 집안만이라도 주름잡는다든지, 그도 아니면 세탁소에서 바늘과 다리미로 옷 주름만 잡고 앉아있더라도 괜찮은 일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눈썹 사이에 八자주름이 깊게 잡혀있었다. 유달리 햇빛에 약했던지라 햇빛만 보면 저절로 눈을 찡그리느라고 그렇게 됐으니 나이 탓이 아니어서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눈밑 두덩에 잡히는 주름과 코에서부터 시작하여 입을 감싸고도는 八자주름은 아주 거슬린다. 이놈이 이렇게 굵어진 것이 언제부터인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제는 영락없이 심술궂은 노인네 얼굴로 만들어버렸다. 거기에다 작년부터 양쪽 입술 끝에 새로 잡힌 Z자 주름은 얼굴을 합죽이를 만들어 짜증스럽게 한다. 유독 입 주변으로 주름살이 많이 잡히는 이유는 쓸 데 없이 입을 함부로 놀려대서 그런가도 싶다. 또 하나 목불인견은 목살의 거미줄 주름인데 이놈이야말로 나이를 감출 수 없는 가장 고약한 주름살이다. 다른 주름살이야 마스크나 화장과 수술로 감출 수 있지만 이놈은 그런 눈속임마저 통하지 않는다. 목줄에 칼을 댈 수 없으니 목을 옷깃이나 스카프로 감싸지 않는 한 감추기 어렵다. 살이 빠져 쭈그러진 목살을 쥐었다 놓으면 3초를 기다려도 거죽이 펴지질 않는다.

주름살의 ‘살’을 고기 ‘살’이라고 한다면 엉뚱하다. 그렇기로 말하면 살이 없는 곳에는 주름살도 없어야 옳다. 그러나 살이 없는 손등, 발등, 이마에도 어김없이 주름살이 잡혀 나이를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주름‘살’은 근육이나 살점이 아니라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비운의 煞(살)이다. 역마살, 도화살, 구김살처럼- 이래저래 늙은이의 주름살은 원망스러운 살이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아직은 이마나 눈 갓, 낯에는 눈에 띄는 주름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라 하지만 실제로는 화낼 때보다 웃을 때가 주름살이 더 깊어지니 마음놓고 웃기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노인이다. 해골을 감싸고 있던 안면 피부는 얇아지고, 지방이 꺼지고 거죽이 남아돌아 생기는 주름을 무슨 수로 막으랴? 아무리 막대로 막고, 가새로 잘라내도 지름길로 질러오는 주름살이란 놈을 어쩌겠는가? 주름살은 연륜이자 나이테라고 생각하면 삶의 관록이 아닐까?

다만 좀 서운한 것은 ‘곱게 늙었다’든지, ‘인자한 노인의 얼굴’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하기야 내 삶이 아름답거나 인자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나라를 떠들썩하게 해가며 보톡스 주사를 맞거나 주름제거 수술을 하고서 억지 칭찬을 받을 마음은 없다. 그러나 ‘사십 이후로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 ‘노인의 얼굴은 자신이 하기 나름’ ‘얼굴은 살아온 행적’이라는 식의 눈깜땡깜 관상론이나 선입관에는 공감하기 곤란하다. 한창 일할 사십에 얼굴이 평온하다면 무책임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칠순이 되어서 얼굴이 인자하게 보인다면 철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노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없다면 개기름이 흐르는 탐욕적인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니 노인의 얼굴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일삼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도 아침마다 거울에 보이는 주름살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허세가 아닐까? 나이 칠십에 좀 젊어 보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도 동안이시네.’ ‘옛날 얼굴 그대로셔’라는 뻔한 거짓말에 기분이 좋아진다면 치기어린 짓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 기분 좋아 활짝 웃는다면 그때야말로 감춰졌던 온갖 잔주름살이 다 잡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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