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 그리운 님께 보냅니다.
기원 寄 遠 이매창 李梅窓
이별 후엔 雲山이 가로막혀 아득히 멀어도
別後雲山隔渺茫◎
꿈속에서는 낭군 옆에서 행복했었네.
夢中歡笑在君傍◎
깨어보니 꿈속인 듯 그림자만 아른거리고,
覺來半枕虛無影
돌아누운 등불에 차가운 눈물만 지네.
側向殘燈冷落光◉
언제나 천리 먼 님을 반가이 만나려나?
何日喜逢千里面
이럴 때면 구절양장 속절없이 끊어지누나.
此時空斷九回腸◉
창 밖 오동나무 비 듣는 소리에
窓前更有梧桐雨
사무치는 눈물을 또 얼마나 흘려야 하나?
添得相思淚幾行◎
<우리시로 읽는 漢詩>
別별後후雲운山산隔격渺묘茫망.
別後는 이별한 후에는, 隔은 ‘막히다’ ‘떼어놓다’, 渺茫은 ‘아득히 멀다’. 구름 덮인 雲山은 ‘그대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단절의 공간입니다. 모든 슬픔은 헤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별 후엔 운산이 가로막혀 아득히 멀어도.’
夢몽中중歡환笑소在재君군傍방.
夢中은 꿈속. 歡笑는 님을 만나 행복했던 순간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는’이라는 보조사를 붙여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사랑을 꿈속에서나마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직설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君旁은 낭군 옆에서. ‘꿈속에서는 낭군 옆에서 행복했었네.’
覺각來래半반枕침虛허無무影영. 側측向향殘잔燈등冷냉落락光광.
覺來에서 來는 따로 옮길 필요없고, 半枕은 자는 듯 마는 듯 비몽사몽(非夢似夢)의 상태입니다. 虛無影으로는 부족하니 헛그림자가 ‘아른거린다’로 보완하여 서술어를 삼아야 합니다.
側向은 ‘옆을 향한’이지만 ‘돌아누운’이라고 해서 그립고 야속한 심경을 옮겨 보았습니다. 殘燈은 ‘꺼져가는 등불’, 밤이 깊었음을 말합니다. 冷落光은 원래 光冷落- 촛농마저 차가이 떨어지다.- 이어야 하지만 압운을 맞추기 위해 光과 落의 자리를 바꾼 것입니다. 그러므로 落을 ‘떨어지다’라는 서술어로 옮겨야 합니다. 冷은 냉엄한 현실을 굳은 촛농으로 비유한 것이고, 촛농은 여인의 눈물입니다. 앞 구와는 대구를 이루도록 옮겨야 합니다. ‘깨어보니 꿈속인 듯 그림자만 아른거리고, 돌아누운 등불에 차가운 눈물만 지네.
何하日일喜희逢봉千천里리面면 此차時시空공斷단九구回회腸장.
何日은 어느 날. 喜는 ‘반가이’ ‘기쁘게’, 逢은 ‘만나다’, 千里面은 ‘천리 밖에 있는 님의 얼굴’입니다만 ‘얼굴’은 생략하는 것이 시를 매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꿈속의 모습일 뿐, 현실적으로는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으므로 다음 구에서 斷腸의 슬픔만을 절감할 뿐입니다.
此時란 ‘꿈에서 님을 만날 때’이고, 空은 ‘헛되이’ ‘속절없이’로, 九回腸은 ‘九折斷腸’으로 창자가 아홉 토막으로 끊어진다는 지극한 슬픔을 의미합니다. 감정의 깊이를 살리기 위해서 의문과 감탄의 종결어미로 처리해야 좋습니다. 앞 구와는 대우이므로 ‘언제나 천리 먼 님을 반가이 만나려나. 이럴 때면 구절양장 속절없이 끊어지누나.‘처럼 짝을 이루도록 옮겨야 합니다.
窓창前전更갱有유梧오桐동雨우.
梧桐雨는 오동잎에 떨어지는 비- 화자의 고독을 더욱 깊게 만드는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에서 창밖에 떨어지는 오동잎은 애상(哀傷)의 상징어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更, ‘또’라는 수식어를 놓는 위치에 따라서 시경의 미묘한 차이를 생각해 볼 만합니다. 有는 생략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구르는 마른 오동잎 위에 뚝뚝 떨어지는 가을비 소리가 독수공방 여인의 고독을 더욱 처절하게 만듭니다.
添첨得득相상思사淚루幾기行행.
添得은 ‘더하다’이지만 ‘사무치는’이라고 하면 詩境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得은 상태의 정도를 나타내는 보조사이므로 따로 옮길 필요 없습니다. 淚幾行은 ‘흐르는 눈물이 몇 줄기인가?’라는 뜻으로 슬픔의 정도를 더욱 깊게 합니다. 그러나 '몇 줄기'보다는 '얼마나 흘려야 하나?'로 옮기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相思는 그리움, 行은 ‘눈물 줄기’입니다. 그러니 行이 많을수록 그 슬픔은 커집니다. 그리고 앞 구의 '또'를 여기로 옮기면 그런 시의가 더 선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치는 눈물을 또 얼마나 흘려야 하나?’라고 옮기면 지나친 의역이라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시의 번역은 의역이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