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발소발(老髮小髮)
머리카락과 욕심은 반비례한다.
나이가 들다 보니 머리칼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머리칼이야 젊을 때부터 감을 때마다 빠져서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빠져나가는 카락을 도저히 채워 나갈 수 없으니 속알머리가 훤히 드러나서 예삿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이 드러나는 것이 꺼려지는 것은 감추고 싶은 일이 많아서일 것이다. 쉰 때만 해도 할 일 없이 흰머리를 뽑은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나마 머리에 붙어만 있어도 그런 다행이 없다. 머리가 줄면 자연히 머리도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든다. 속알머리가 없다보면 소갈머리까지 없어지지 않을까?
머리카락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늘어지는 것도 서운하다. 매가리 없이 가늘어진 머리카락이 비질할 때마다 방바닥에 각질부스러기와 함께 날리면 무기력감에 뼈저리다. 삼손의 머리카락이나 되는 것처럼- 젊었을 때는 곱슬머리에 불만도 있었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곱슬거릴 기운조차 없는지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있다. 머리칼이 그 모양이니 얼굴도 무사할 리 없다. 맥빠진 허연 머리칼을 이고 있는 얼굴은 아무리 가꿔 봐도 때깔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머리카락은 예나 마찬가지로 길어나서 이발소 신세는 여전하다. 머리카락이 줄어들다 보면 비듬도 숨을 곳이 마땅치 않으련만 놈들은 악착같이 머리사이로 비집고 붙어 있다. 그래도 머리칼이 줄어드니 좋은 점도 있다. 옛날처럼 머리 감고 애써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모양 다듬는 수고는 안 해도 좋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털어내고 빗질을 몇 번 하면 힘없는 머리칼은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다. 그러고 보면 머리칼이란 머리를 번잡스럽게 하는 번뇌인가 보다. 스님이 삭발하는 까닭을 알 것 같다.
이 얼굴은 본래 수염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일회용 면도기 한 개로 한 달 정도는 너끈하다. 그런데 수염은 머리칼보다도 빨리 쇤다. 그런데도 머리칼과는 달리 여전히 거칠고, 뻣뻣해서 아내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대머리도 수염은 풍성한 것을 보면 머리털과 수염은 전혀 다른 털인 것 같다. 남자의 품격은 수염이 지켜내는 모양이지만 그걸 길러서 억지로 품격을 세울 생각은 없다. 그러니 면도기는 여전히 필수품이다.
머리카락과 수염만 서운한 게 아니다. 나는 진화가 더 된 인간인지 본래 털이 적은 편이라 털 많은 사람보다는 덜 야만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귀공자가 아니어도 좋으니 털이 좀 오래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다보니 다리털이 먼저 풀이 죽었다. 허벅지, 정강이 털이 점점 닳아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안경이 아니면 털을 구경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중국의 이기주의자들은 ‘남을 위해서는 정강이 털 한 올도 뽑아낼 수 없다’고 선언했는데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몇 올 부지하고 있는 그 털을 한 올이라도 누가 달라고 한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발등, 발가락 털은 좀 나은 편이지만 그나마 몸 상태에 따라서 수시로 달라지는 눈치이다. 손에 있던 털은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조차 없다.
새벽에 잠이 깨니 사람은 왜 털이 있는 걸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필요했으니 현대인에게도 아직 털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냥 짐승이었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 사라져가는 털은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부지할 수 없으니 몸이 알아서 포기하는 것일 게다. 나무가 겨울이 되면 낙엽을 떨구어 내듯이-
젊었더라도 머리카락이 적으면 능력과 상관없이 여자한테 경멸을 당하기 십상이다. 여자에게 대머리가 없다는 것은 인류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상상해 보면 쉽게 알 일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머리는 많고 털이 적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지 않아아도 늙을수록 마누라는 점점 험악해져 가는데 거기에 험상스런 털까지 가세한다면 더 무서울 일이다. 의학적으로도 모발은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체의 신비에는 비할 수 없지만 털의 신비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하찮은 ‘터럭’과 달리 ‘털’이라고 하나보다.
머리가 줄면 의지도, 활력도 꺾이는 법이지만 욕심만큼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옛말에 ‘머리카락은 짧아지고, 욕심은 길어진다’라고 했다. 두보가 혼욕불승잠(渾欲不勝簪) - 머리에 비녀조차 꽂을 수 없구나 - 라고 머리카락이 없음을 탄식한 것도 비녀를 꽂고 싶은 욕심을 드러낸 것이다. 요새 같으면 흔한 가발이나 모자 하나로 다 해결될 문제이지만 그것부터 욕심이다.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상종하지 말라’고 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곧 의리 없고, 욕심 많은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머리가 빠지고 허옇게 센 노인네야말로 이제 인간 취급을 받을 만하지 않을까? 부질없는 노욕, 노탐만 없앤다면 -
나이가 들면 모발을 헤아려 욕심을 최소로 줄이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 혹은 가발 쓰고, 모자 쓰고, 영양제 먹고, 보톡스 맞고, 젊음을 되찾아 다시 못 올 지금을 즐기라고 야단들이지만 그것도 몇 조금이지 않을까? 그렇게 인생의 쾌락을 다 누리다가는 죽을 때 후회가 더 커질 것 같다. 나는 털이 적어서 그런지 그럴 자신도 없다. 갈수록 허접하게 드러나는 속알머리를 보면서 하는 소갈머리 없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