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지 닳은 까닭은
28. 금반지 닳은 까닭 閨 怨 李梅窓
1
한 맺힌 이별의 슬픔에 重門마저 닫히니
離恨悄悄掩中門◎
소매는 눈물에 젖어 향내마저 가셨다오.
羅袖無香滴淚痕◎
독수공방 규중에는 여인만이 쓸쓸한데,
獨處深閨人寂寂
뜨락에 가랑비는 황혼마저 막아서네.
一庭微雨鎖黃昏◎
2
그리움을 오롯이 침묵에 묻어두자니
思想都在不言裏
하루저녁 애닳음에 흰머리가 절반이네.
一夜心懷鬢絲半◎
사무치는 이 외로움을 아시려거든
欲知是妾想思苦
헐렁거리는 이 금반지를 살펴보구려.
須試金環減舊圓◎
1
離이恨한悄초悄초掩엄中중門문.
離恨은 이별의 한, 悄悄는 ‘한 맺힌’, 掩은 문을 닫다. 中門은 ‘가운데 문’보다는 重門 ‘규중 깊은 문’이어야 詩意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번역에서라도 重門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거기에다 ‘마저’라는 조사를 덧붙이면 독수공방의 절대고독이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羅나袖수無무香향滴적淚루痕흔.
羅袖는 비단저고리 소매. 본래 향내 짙던 소매에 고독의 눈물을 하도 많이 흘려 향내가 씻겨 말라버렸다는 표현이 고독을 더욱 깊게 합니다. 滴은 눈물방울이고, 淚痕은 눈물자국입니다. 滴과 淚는 시어의 중복이므로 하나는 생략합니다. 그리고 향내가 ‘없다’라고 하기보다는 ‘가셨다오.’라고 하는 것이 더 시답습니다.
獨독處처深심閨규人인寂적寂적.
獨處는 ‘독수공방’이고, 深閨는 여인이 사는 깊은 방이니 閨中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寂寂은 적막, 외로움. 나머지 글자들은 모두 이 여인의 고독과 규원을 설명하는 말이니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一일庭정微미雨우鎖쇄黃황昏혼.
一은 庭보다는 微雨에 연결하여 ‘한 줄기’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좋습니다만 아예 생략해도 별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微雨는 간단히 ‘가랑비’입니다. 鎖黃昏을 옮기기 간단하지 않은데 밤이 다가오는 황혼은 비와 함께 여인을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비는 황혼마저 지워버려 밤을 더욱 재촉합니다. 鎖는 어둠에 여인을 자물쇠로 채워 가두는 상황으로 규원의 한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듭니다. ‘뜨락에 가랑비는 황혼마저 막아서네.’라고 했는데 지나친 의역이라고 할까요?
2
思사想상都도在재不불言언裏리.
思想은 간단히 ‘그리움’이고, 都在는 ‘모두 있다’는 뜻이지만 시어로서 자연스럽지 못하여 ‘오롯이’로 옮기는 것이 여인의 간절한 忍苦의 심경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不言은 ‘침묵’이고 裏는 속에 ‘묻다’로 보완해야 좋습니다.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한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모든 한을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다는 절규입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은 다음 구의 백발의 원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움을 오롯이 침묵에 묻어두자니‘라고 했습니다.
一일夜야心심懷회鬢빈絲사半반.
鬢絲半은 ‘하얗게 쇤 흰머리가 절반이다’라는 의미입니다, 一夜의 一은 ‘하루 저녁’이어야 하므로 꼭 살려야 합니다. 心懷는 ‘애닳음’. 鬢絲는 귀밑머리. 실제로 귀밑머리가 가장 먼저 쇱니다. 하룻저녁 애닳음에 귀밑머리가 半白이 되었다는 것은 그 고통의 깊이를 과장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과장은 시인의 특권입니다.
欲욕知지是시妾첩相상思사苦고.
欲은 미래의지를 나타내는 ‘-하려거든’이고, 妾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구태여 옮기려 하지 말고 是라는 대명사에 그 詩意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낫습니다. 相思는 그리움입니다. 相思의 쓰라림을 강조하기 위해 ‘뼈저린’ ‘사무치는’정도의 수식어로 옮기면 어떨까 합니다. 여기는 다음 구에 대해서 이유, 원인의 역할이므로 연결어미에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須수試시金금環환減감舊구圓원.
須試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여인의 요구로 해서 서술어로 삼아야 합니다. 다만 ‘반드시’는 생략하는 것이 좋습니다. 試는 닳아빠진 금반지를 시험삼아서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그 종결어미도 閨怨을 절실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金環은 금반지. 減舊圓은 원래의(舊) 금반지(圓)모양이 닳아진(減)것일 수도 있지만 사랑을 잃은 여인의 손이 그리움에 야위어 반지가 헐렁거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랑을 잃고 독수공방하는 여인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독과 무료를 달래기 위해서 밤새도록 방바닥에 금반지를 굴리다 보니 금반지가 다 닳아버렸다는 기막힌 사연일지도 모릅니다.
애정에 관한 작품은 근엄한 양반들보다는 여류시인에 의해서 많이 지어졌고, 그러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 것은 그 중에서도 기녀들이었습니다. 황진이는 시조로 많이 알려졌으므로 여기에서는 한시로 뛰어났던 李梅窓의 작품을 여럿 들어보았습니다. 許筠은 누이동생인 난설헌과 더불어 매창을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칭송했습니다. 매창- 창밖의 매화- 님을 그리는 비련의 여인을 자칭한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애정의 시로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고 생각하여 매창의 여러 작품을 소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