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근래 사랑이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매우 특별한 관계에 쓰였던 말인데 이제는 사랑이라는 말을 안 하면 냉혈한이나 야만인으로 몰릴 정도로 유행되는 말이 되었다. 사랑이란 말은 어느 모로 보나 좋은 뜻이므로 널리 쓰일수록 더 좋은 일이다. 이렇게 좋은 말을 좀처럼 대놓고 발설하지 못한 우리 세대는 그만큼 사랑이 결핍된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언어는 소통뿐만 아니라 신통한 염력(念力)을 가지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고, 최면이나 기도, 주술(呪術)행위도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요즈음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성의 사랑을 경험한다고 하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는 애정이 메마른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회를 보면 ‘사랑은 아무나 하나’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래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사랑을 자주 말할수록 사랑하는 마음도 늘어날 것이 아닌가? 어쩌면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말을 잘 이해 못하고, 사랑은 역시 ‘남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이란 말에 부담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웃은 물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너무 어렵기만 하다.
이렇게 좋은 사랑이지만 그 말의 내력은 분명치 않다. 말의 어원을 밝히는 일은 무모하기도 하지만 말의 의미를 정확히 하고, 소통력을 높일 수 있다. ‘사랑’이란 말이 정착되기 전에는 ‘괴다, 닷다, 그리다’ 등이 유사어로 쓰였다. 그 말들이 언제부터 지금의 ‘사랑’으로 대체되었는지 분명치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랑 愛’로 굳어진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愛’는 본래 지금의 ‘사랑하다’보다는 ‘好- 좋아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7情의 喜努哀樂愛惡欲(희로애락애오욕)의 愛도 지금의 ‘사랑’이 아니라 惡의 반댓말인 ‘好’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고대 漢字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愛는 사랑이 아니라 ‘行貌- 천천히 걷는 모습’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게 맞다면 원래 ‘愛’는 지금의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옛날 선조들은 남녀 간의 사랑을 隱愛(은애)라고 했는데 그것은 ‘몰래한 사랑’이 아니라 ‘몰래 좋아했다’가 더 가까운 뜻이다. 선조들의 사랑은 원래 ‘소유하는 愛’가 아니라 ‘베푸는 好’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愛人’이 아니라 ‘情人’이라고 했고, 그리스도의 사랑도 그 본질은 ‘베푸는 것’이었다.
‘사랑’의 어원을 두고 말이 많지만 한자인 ‘思量- 생각하고, 헤아리다, 배려하다’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思量을 우리 발음으로 적은 것이 ‘사량’이고, 이것이 단모음화되어 ‘사랑’으로 되었고, 그것이 고유어 ‘괴다, 닷다’를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어 Love의 번역어가 되면서 지금의 ‘사랑’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랑은 범어 Sari에서 왔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불교적인 용어라고 할 것인데 '자비'를 두고 구태여 '사랑'이라는 용어를 썼을 것 같지 않다. 우리말의 어원을 고유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만 ‘살(肉)’이나 ‘살(生)’에 앙(仰)’이 붙어서 ‘사랑’이 되었다고 한다면 거의 아재개그 수준이다. ‘思郞- 낭군을 생각하다’에서 왔다면 남자는 사랑도 안했다는 말인가? 우리말의 어원을 걸핏하면 외래어에서 찾는 버릇도 안 좋지만 한자어가 70%가 넘는 우리 어휘의 어원을 막무가내 고유어에서만 찾는다면 절반 이상은 사실이 아니거나 헛수고에 그칠 것이다. 학문은 과학이지 감정이 아니다. 점점 의미가 넓어진 지금의 사랑도 ‘좋아하다 - 好’ ‘생각하다 - 思量’ ‘널리 베풀다 - 博愛’에서 멀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랑’은 한자에서 어원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애매한 어원 탐구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사랑’이 기독교의 교의라 해서 무조건 최고의 진리라고 믿는다면 독선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부처의 자비와 공자의 仁과 어떻게 다른 것이냐를 비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 ‘최고의 善’을 달리 표현했을 뿐이다. 원래 사랑의 의미는 ‘묵묵히 善을 실천하는 것’이고,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입으로만 ‘사랑해’를 남발하면서 내것으로 차지하려 하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사랑 愛’를 꾸준히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정한 ‘사랑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인류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우선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