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연꽃이 눈물되는 사연
閨 怨 규원 許蘭雪軒(1563-1589)
1
비단 치마 저고리는 눈물 쌓여 얼룩지고
錦帶羅裙積淚痕◎
철따라 피는 꽃은 임 그리움에 한이 되었네.
一年芳草恨王孫◎
요쟁 들어 강남곡을 뜯어보아도
瑤箏彈盡江南曲
배꽃은 비에 젖고 낮에도 문은 닫혀있네.
雨打梨花晝掩門◎
2
달이 기우는 가을밤에 병풍도 쓸쓸한데,
月樓秋盡玉屛空◎
갈대밭에 서리 내리고 기러기 둥지를 찾는다.
霜打蘆洲下暮鴻◎
가야금 튕겨보아도 님은 오지 않고,
瑤瑟一彈人不見
연꽃만 쓸쓸히 창 밖 연못에 진다.
藕花零落野塘中◎
<우리시로 읽는 한시>
錦금帶대羅나裙군積적淚루痕흔.
錦帶는 비단 끈, 羅裙은 비단 치마로 겉으로는 비단 치장으로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여인들의 고독이 얼룩져있습니다. 積淚痕-눈물자국-이라 했으니 거기에는 고독한 여인의 쌓인 한이 눈물로 서려있겠죠.
一일年년芳방草초恨한王왕孫손.
芳草는 꽃을 말하고, 일년 가는 꽃은 없으므로 一年방초는 ‘철따라 피는 꽃’일 것입니다. 곧이곧대로 ‘일년 향내나는 풀’이라고 옮기면 이상한 시가 될 것입니다. 王孫은 ‘왕의 자손’이 아니라 ‘정 둔 임’이라고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恨은 동사로 ‘임을 원망하다’입니다. 그러나 임을 원망하여 한이 되었다기보다는 임을 그리워하는 정이 하도 깊어 한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시의일 것입니다. 一年芳草와 恨王孫과의 의미 연결을 위해서 ‘그리움’이라는 시어를 보완하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왕손에 한을 품었네’라고 해서야 번역이 아닙니다.
瑤요箏쟁彈탄盡진江강南남曲곡.
瑤箏은 옥으로 만든 거문고입니다. 시어가 길어지니 그대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彈盡에서 盡을 ‘다하다’라고 하기보다는 ‘아무리’라고 풀어서 아무리 ‘튕겨보아도’로 옮기면 충분할 것입니다. 江南曲도 사랑의 연가이니 그대로 옮겨야 합니다. 가장 좋은 악기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연주해보아도 정작 사랑하는 임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雨우打타梨이花화晝주掩엄門문.
그런 가운데 배꽃에 비가 내리는 장면은 여인의 閨怨을 더욱 깊게 합니다. 그래서 배꽃에 비가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打라고 했을 겁니다. 비가 내리는 것보다 배꽃을 때린다고 하면 그만큼 화자의 마음에 아픈 상처가 전달될 수 있습니다. 掩門은 ‘문을 닫다.’이니, 낮(晝)에도 문이 잠겨있다는 것은 낮마저도 고독하다는 말이니 밤에는 오죽할까요?
2
月월樓루秋추盡진玉옥屛병空공.
月樓는 ‘달이 떠있는 누각’으로 화자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거기에 달이 뜨고, 가을 밤이 깊으면 여인의 고독과 그리움은 더 깊어지겠죠. 秋盡은 ‘가을이 다하다’보다는 ‘깊어가는 가을 밤’이라고 하는 것이 원의에 가까울 것입니다. 閨中深處에 옥으로 만든 병풍은 독수공방하는 여인으로서는 그것이 화려할수록 오히려 그 한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병풍이 비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방이 비었고, 여인은 더욱 외로울 것입니다.
霜상打타蘆노洲주下하暮모鴻홍.
서리가 갈대밭을 때린다고 한 것은 앞에서 비가 배꽃을 때린다고 한 것과 같은 詩想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잃은 상처의 깊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것과 서리가 내리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1과 같이 ‘때린다’로 옮기는 것보다는 ‘서리가 내린다’라고 옮기는 것이 시상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서리가 내리기만 해도 독수공방하는 처지로서는 충분히 아픈 상처일 것입니다. 기러기가 갈대밭인 蘆洲에서 둥지를 찾는 장면은 실제의 장면이 아니라 병풍 속의 그림입니다. 下暮鴻은 저녁에 둥지를 찾아오는 기러기입니다. 下는 내리다, 暮는 저녁, 鴻은 기러기. 下는 ‘내리다’가 사전적 의미이지만 둥지를 ‘찾는다’라고 해야 詩境에 더 맞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서술어이기 때문에 끝에 놓아야 맞지만 압운을 맞추기 위해서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병풍 그림이 아니라 화자의 처지와는 전혀 상반된 그림이라 더욱 서글픈 일입니다.
瑤요瑟슬一일彈탄人인不불見견.
瑤瑟은 옥으로 만든 비파, 彈은 사랑의 노래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一은 ‘한 곡조’이지만 아예 생략하는 것이 낫습니다. 人은 사랑하는 그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랑의 노래를 애타게 불러보아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藕우花화零영落락野야塘당中중.
藕는 蓮과 같습니다. 연꽃만 연못에 떨어질 뿐이라고 한 것은 사실로 따져보면 깊은 가을하고는 맞지 않는 정황입니다. 역시 병풍 속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들도 병풍 속의 그림에서 화자의 규원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零은 ‘쓸쓸히’라는 유사시어로 옮기는 것이 詩意에 더 좋고, 野는 규원과는 전혀 맞지 않는 글자이므로 아예 생략했습니다. 못을 뜻하는 塘은 池와 같이 쓰이지만 구태여 구분하여 말하면 인공으로 만든 못은 塘이고, 자연 못은 池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연못은 들에 있는 자연 못이 아니라 집안 정원에 있는 인공 연못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연꽃잎으로 떨어지는 규중여인의 恨을 받아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