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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13

대동강 연가

by 김성수

패강녀 浿 江 女 林悌

1.

대동강 처녀 봄놀이 나갔는데

浿江兒女踏春陽◎

강가 수양버들이 정작으로 애를 끊나니.

江上垂楊正斷腸◎

저 아지랑이로 비단을 짤 수 있다면

無限煙絲若可織

님에게 무의상을 지어 올리련만.

爲君裁作舞衣裳◎

2.

여자의 고움이란 꽃과 같아 덧없이 시들어

妾貌似花紅易減

당신 사랑은 버들솜처럼 그렇게 날아가겠지요.

郞心如絮去何輕◎

백척(천 길) 청류절벽을 들어 옮겨다

願移百尺淸流壁

가시는 님의 뱃길 막아주면 좋으련만.

遮却蘭舟不放行◎


이 시는 패강가 10수 중에 여섯 번째, 일곱 번 째입니다. 浿江은 대동강입니다. 평양은 예부터 색향으로 알겨졌는데 평양아가씨가 예쁜 걸 보면 여기에는 자고로 미인이 많았던가 봅니다.


浿패江강兒아女녀踏답春춘陽양 .

踏春陽은 봄에 들에 나가서 하는 봄놀이입니다. 踏靑(답청)이라고도 합니다. ‘浿江兒女’는 대동강가에 사는 평양 처녀입니다.

江강上상垂수楊양正정斷단腸장

문학 작품에서 수양버들은 원래 애정의 상징물로 자주 애용되던 소재입니다. 당연히 여기에서도 垂楊은 처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배경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江上은 ‘강 가’라고 해야 좋을 것입니다. 늘어진 수양버들만 보아도 애를 끊는다는 것은 처녀들의 봄바람에 춘정이 무르익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의 단장은 슬픔의 단장이 아니라 기쁨과 설레임으로 애간장이 녹기 때문일 것입니다. 正은 ‘정작으로, 정말, 참으로’ 등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無무限한煙연絲사若약可가織직.

無限煙絲는 대동강에 가득한 아지랑이를 비단실로 비유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앞 구에서 수양버들이 묘사되었으므로 가느다란 수양버들가지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비단은 비유적 사물이기 때문에 그 재료가 버들이건 아지랑이건 상관없는 일입니다. 若은 ‘만약’이라고 하기보다는 可織-짜다의 연결어미로 반영시켜 ‘짤 수 있다면’으로 옮겨야 좋습니다.

爲위君군裁재作작舞무衣의裳상.

爲를 ‘위하여’라고 해석하면 ‘님을 위하여’라고 해야 하고, 裁作도 ‘지으련만’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소망이요, 가상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裁作도 ‘옷을 짓다’라는 의미의 重複이므로 하나는 생략해도 좋습니다. 舞衣裳은 ‘화려한 춤 옷’입니다. 그래서 앞구의 若과 연결시켜 ‘님을 위하여 무의상을 지으련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爲를 생략하고, ‘에게’로 바꾸면 ‘님에게 무의상을 지어 올리련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무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은 님이 아니라 내가 님을 위하여 추는 것이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님에 대한 애정과 봄날의 경치에 대한 정취가 담겨진 상징물입니다. 다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지으련만’으로 그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2.

妾첩貌모似사花화紅홍易이減감.

1이 사랑이 이루어지기 전의 사정이라면 2는 사랑이 이루어진 후의 女心을 그려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妾貌는 여인이 자신의 미모를 가리키는 말이고, 似花는 ‘꽃 같다’입니다. 紅은 젊음 아름다움이고, 易減은 ‘쉽게 시든다’이니 여인의 한때 미모는 금세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패강녀는 행복과 아름다움을 누리기도 전에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郞낭心심如여絮서去거何하輕경.

郞心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남자의 마음, 絮는 버들의 버들솜, 버들꽃가루입니다. 버들솜이 흩날린다는 것은 사랑하는 님이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이별과 아픔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그 버들가루를 날아가지 못하게 잡아놓아야 하는 절박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去何輕을 직역하여 ‘어찌 그리 가벼이 가나요?’라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날아가겠지요.’라고 옮기는 것이 여인의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경이 섬세하게 잘 전달될 것입니다. 輕을 ‘가볍게’라고 하기보다는 ‘그렇게’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버들솜은 아주 가벼이 날리기 때문에 去何輕에는 여인의 불안과 원망이 더 절실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願원移이百백尺척淸청流류壁벽.

願은 ‘원하옵건대’로 그 소망의 대상은 천지신명이어야 합니다. 다만 번역은 생략하고 다음 구에 간절한 소망을 반영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청류벽을 옮기는 일은 자신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百尺淸流壁은 떠나가는 임의 뱃길을 막으려는 가로막입니다. ‘百尺’은 님을 보내지 않으려는 애정을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하늘이여-),천 길 청류절벽을 들어 옮겨서’에는 떠나는 님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절실하게 묻어있습니다.

遮차却각蘭난舟주不불放방行행.

遮는 ‘가리다, 막다’이고, 蘭舟는 임이 타고 떠나가는 배입니다. 그것을 대동강의 청류절벽으로 굳게 막아서 님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却과 放은 생략해야 좋은 중복자입니다. 不放行은 ‘가지 못하게’이지만 遮에 이미 의미가 반영되었으므로 생략합니다. 앞 구의 願을 직역하기보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여기에서 서술어의 어미로 처리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가시는 님의 뱃길을 막아주면 좋으련만.’이라고 해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일 뿐이라는 사실을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앞 시와의 시의(詩意)도 연결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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