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 곤지의 내력
요즈음은 마스크의 시대인지라 사람의 얼굴을 온전하게 쳐다보기 어렵다. 익명의 시대인 점을 생각하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마스크는 시대적인 요청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블라인드, 비대면이 거의 일상생활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가 싶기도 하고, 좀처럼 마스크를 벗지 못할 것이라는 짐작도 있다.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지만 마스크의 좋은 점도 적지 않다. 우선 마스크를 쓰고서도 미운 얼굴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고 보면 얼굴은 예쁜 곳보다 미운 구석이 많은 것 같고, 마스크는 그런 사람의 약점을 가려주는 구실도 한다. 잘 생긴 얼굴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은 다른 얼굴과 비교될 일이 없어 좋다. 성형과 의사와 화장품 회사는 불만이겠지만 미모지상주의나 얼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폐단도 줄어들 것이다.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여자의 얼굴에 이러쿵저러쿵한다면 점잖지 못한 짓이지만 보조개는 아무래도 여자의 매력 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보조개는 덧니와 더불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의 포인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보조개는 얼굴 근육이 잘못 연결된 현상이고, 덧니는 건강한 치열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덧니를 빼는 일이 많지만 보조개는 옛날부터 억지로 만들려 애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보조개를 가진 여자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보조개가 예쁜 여자는 대단한 행운이다.
보조개는 이름만으로도 분명히 예쁘지만 ‘볼에 있는 조개’가 어원이라면 예쁜 볼에 살짝 파인 곳이 조개를 닮았다니 좀 서운하다. 그보다는 ‘볼우물’이 ‘볼에 있는 옹달샘’ 같아서 더 좋은 이름일 것 같다. 그런데 중국말로는 볼우물이 주와(酒渦)라서 더욱 호기심이 간다. 직역하면 ‘술 소용돌이’, 의역하면 ‘술샘’ 혹은 ‘술잔’이 될 것인데 여자의 얼굴에 ‘술잔’이 오가니 여성들이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우리의 보조개나 볼우물보다 점잖지 못한 이름이다. 여자의 얼굴에 술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니-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그녀의 얼굴을 보면 술맛이 더 당긴다? 얼굴이 섹시하다? 뺨의 뇌색녀? 요즈음 이런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성희롱으로 몰릴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음흉스런 옛날 풍류남들의 속셈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에는 주와를 가진 여자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옛사람들의 글로써 酒渦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술에 취해보니 여인의 뺨에 작은 물결이 일도다’(君恩许归此一醉,旁有梨颊生微涡 - 宋 胡銓)라고 했으니 이는 주와의 내력을 밝힌 것이다. ‘주와가 깊어 온갖 교태가 넘치도다.’(媚靥深深,百态千娇。- 宋·柳永) 이는 주와의 섹시함을 읊은 것이다. ‘미소진 주와로 돌아보니 십 만 군사가 무너지도다.’(笑靥才回面,十万精兵尽倒戈. - 唐·鱼玄机) 이는 주와의 살인적인 매력을 고발한 것이다. ‘주와에 수심이 가득하니 평생의 병이로다.’(态生两靥之愁,娇袭一身之病。- 淸·曹雪芹) 이는 주와의 불길한 관상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미인의 주와는 지조 있는 충신도 난봉을 피우게 했고, 십 만 군사도 한번 주와의 교태에 무너졌으며, 그것은 평생의 화근이 되기도 했으니 비록 잘못된 근육이었지만 주와는 천하의 남자들을 쥐락펴락했던 여자의 흉기였다.
주와에 대한 또 다른 내력이 있다. 술독에서 술이 발효되면 알콜이 밑에서 올라오면서 표면에 수포와 공기구멍이 생기는데 그 모양이 술샘(酒泉)을 닮아서 주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미인의 얼굴로 옮겨붙은 걸 보면 역시 술(酒)과 미인(色)은 뗄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조롱곳 누로기 매와’에서 ‘조롱곳’들 두고 이꽃 저꽃 말이 많는데 그것이 주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주와에 대한 중국의 전설이 또한 흥미롭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의 황천을 지나게 되는데 누구나 맹파가 주는 맹파탕(孟婆湯)을 마셔야 한다. 이승의 일체 기억을 지워내는 맹파탕을 마시면 모든 업보를 씻고 새로운 세계로 가게 된다. 그런데 이 ‘망각의 물’을 거부하면 얼굴에 주와를 찍어준다. 주와를 가진 사람은 과거의 은원(恩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주와는 저승의 질서를 거부한 징벌이다. 그것은 미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여인들의 비극적 표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은 주와로 남자의 사랑을 차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와가 없는 여인들은 연지(臙脂)를 양 볼에 찍어 볼우물을 그려 넣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때부터 연지로 얼굴에 볼우물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전통혼례식에서 얼굴에 빨간 연지 곤지를 찍었는데 이는 인공 볼우물, 주와였던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선천적으로 볼우물이 흔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었으며, 근래에는 볼우물 성형수술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볼우물은 뭇 여인들의 소망이었다. 볼우물은 옹달샘보다도 작은 우물이지만 남자에게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함정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사라져 예쁜 볼우물을 보았으면- 하고 있으니 아직은 덜 늙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