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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17

그네터에서 생긴 일

by 김성수

추천곡 鞦 韆 曲 임제林悌

1.

흰모시 치마저고리에 빨간 허리띠 날리며

白苧衣裳茜裙帶

아가씨들 어우러져 그네를 뛰는데-

相携女伴競鞦韆◎

건너편 백마 탄 사내는 뉘 집 도령이기에

堤邊白馬誰家子

말채찍 걸어놓고 정신을 팔고있나?

橫駐金鞭故不前◎

3.

어쩌다 머리채 금비녀 떨어트리니

誤落雲鬢金鳳釵◎

사내가 얼른 주워 의기양양 히죽거린다.

遊郞拾取笑相誇◎

부끄러워 속삭이며 사내 집을 묻는 말이

含羞暗問郎居住

푸른 버들 주렴 내린 몇 번째 집인가요?

綠柳珠簾第幾家◎

<우리시로 읽는 漢詩>

제목에서부터 여인의 낭만적인 정경이 연상됩니다. 옛날에 鞦韆-그네뛰기 놀이는 아녀자가 떳떳하게 바깥출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래서 자주 청춘남녀 사랑의 현장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한 제목에 세 편의 절구가 모여 이루어진 연작시입니다. 그리고 각 시는 사건의 진행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작중 인물들의 넘치는 연정의 정서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기교가 놀랍습니다. 사건보다는 서정적인 정감을 옮기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1.

白백苧저衣의裳상茜천裙군帶대.

여기에서는 등장하는 여인의 묘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白苧는 흰 모시, 衣는 저고리, 裳은 치마입니다. 茜은 붉은 색, 裙帶는 허리띠, 치마끈입니다. 원작에 서술어가 없어서 ‘날리며’로 보완해서 옮겼습니다. 흰 모시 치마저고리에 빨간 허리띠 날리고 있는 한 폭의 미인도가 그려집니다.


相상携휴女여伴반競경鞦추韆천.

女는 아가씨들, 相-서로, 携-잡고, 伴-같이를 묶어서 ‘어우러져’라고 했습니다. 원작은 시어의 중복입니다. 鞦韆은 그네입니다. 競은 다투어이지만 ‘뛰는데’라고 옮겼습니다. 종결어미로 맺어야 하지만 다음 句가 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인과관계의 연결어미로 처리하는 것이 詩想전개에 좋을 것 같습니다. 여인이 있는 곳에 남자가 모여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堤제邊변白백馬마誰수家가子자.

堤邊은 여인들이 그네 뛰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곳이고, 거기에 나타난 남자가 있기에 사건은 시작됩니다. 그냥 ‘둑 근처’라고 하면 시어가 아니므로 생략하고 ‘건너편’이라는 수식어를 보완하면 詩意가 더 살아날 것입니다. 白馬는 백마를 탄 풍류남아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誰家子는 ‘누구 집 아들’. 요즘으로 말하면 오렌지족이겠지요.


橫횡駐주金금鞭편故고不불前전.

金鞭은 황금 말채찍. 橫駐는 비스듬히 걸어놓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에 흠뻑 빠져 말을 세워놓고 떠날 줄 모르는 난봉꾼들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故不前은 ‘일부러 가지 않는다’의 뜻이지만 ‘정신을 팔고있나?’라고 하는 것이 간결한 詩語입니다. 사실은 '침 흘리며 넋이 나간' 상태겠지만 시의 품격은 지켜야 하겠지요. 이 장면은 사건의 실마리에 해당하므로 감정보다는 사건의 발단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3.

誤오落락雲운鬢빈金금鳳봉釵채.

誤落은 그네를 뛰다가 ‘실수로 잘못 떨어트린’ 金鳳釵, 즉 금비녀입니다. 誤를 ‘잘못’이라고 하기보다는 ‘어쩌다’라고 하는 것이 낫습니다. 雲鬢은 여인의 치렁한 머리채입니다. 원작에는 없지만 비녀를 떨어뜨린 것은 당연히 아가씨입니다. 그런데 금비녀는 귀중품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 할 물건이기에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됩니다.


遊유郞랑拾습取취笑소相상誇과.

遊郞은 건너편에서 정신없이 여인을 쳐다보던 백마 탄 풍류남입니다. 拾取는 줍다. 笑相誇는 비녀를 주운 사내가 주변의 동료들에게 자랑하면서 득의의 웃음을 짓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여인에게 접근할 구실거리를 손에 넣었으니 주체하지 못하는 그 기쁨을 옮겨내야 합니다.

含함羞수暗암問문郎랑居거住주.

含羞는 ‘부끄러워하면서’이고, 暗問은 ‘머뭇거리며 속삭이며 묻다’입니다. 郞은 사내, 居住는 사내의 집. 잃어버린 금비녀를 찾으려니 사내에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자의 솜씨가 돋보입니다. 아마도 여인 역시 사내가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당장에 비녀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고 사내의 집을 묻는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을 묻는다는 것은 집으로 찾아갈 수도 있다는 의중일 것입니다.

綠녹柳류珠주簾렴第제幾기家가.

綠柳珠簾은 버드나무 둘러치고, 주렴이 내린 집이니 호사스러운 도령의 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第幾家는 문장구조로 보아서 본래 ‘몇 번째 집’이냐고 묻는 의문문일 것입니다. ‘푸른 버들 주렴 내린 몇 번째 집인가요?’ 여인들의 거침없는 열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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