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경올림픽이 끝났다. 일본이 하는 짓을 생각하면 올림픽 참가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외교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메달 숫자만 따지면 만족할 수 없지만 올림픽 메달에 국력과 국운을 걸었던 때를 생각하면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가 얻은 성과 또한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국력을 기울여 올림픽 메달이 세계 10위 안에 든 것보다 국가경쟁력, 언론자유 지수, 국가청렴도가 높은 것이 진정 우리의 국력과 국운이 흥성한 것이다.
코로나 올림픽이다 보니 중계방송이 아니면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여러 매체에서 다투어 경기 중계를 하고, 서로 잘생긴 캐스터와 저명한 해설가를 불러 모의기에 바빴다. 라디오가 아닌 TV는 아나운서의 외모와 말솜씨보다는 옆에 있는 해설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화면을 보는 TV 중계는 아나운서의 장면 설명보다는 해설가의 장면 해석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청자에 도움이 되어야 할 해설이 경기 관람에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 스포츠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시청자의 수준도 높아졌는데 중계방송은 이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이 일방적 해설이라면 지금은 공감 해설이라 해설가들은 각별한 노력과 막중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기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고, 평가를 하고 싶어한다. 선수들이 작품을 쓴다면 해설가는 작품에 대한 평론가이다.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일을 설명해 주어야 하고, 선수가 하는 동작에 의미와 평가를 매겨야 한다. 시청자가 모르는 경기 규칙이나 경기 흐름을 알려주어야 한다. 화면에 나오지 않는 장면을 설명해 주고, 움직이는 선수 이름을 말해주어야 한다. 경기에 대한 규칙, 역사, 유래, 일화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해당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 외국 선수에 대한 정보를 갖추어야 한다. 해설가는 경기를 분석하고, 관점 포인트를 전달하고, 선수에 대한 조언을 해 주고, 경기 운영의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승부의 전달에 그칠 것이 아니라 경기력 향상과 스포츠 저변을 확충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해설가는 스타 출신이 적당한 말로 시간 때우기나 말장난, 말재주를 자랑하는 재담가가 아니다. 해설가는 전문적인 지식과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어엿한 평론활동이다. 좋은 평가는 학습력을 높이듯이 좋은 해설은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관중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경기력과 해설가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필연적이다.
해설의 중요성은 스포츠뿐이 아니라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작가와 비평가는 앙숙 같지만 작품에 대한 좋은 해설이 있어야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다. 올바른 언론이 없으면 정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사회의 정의도 서지 않는다. 언론은 사회현상에 대한 해설이다. 언론이 사회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사회도, 정치도 발전할 수 없고,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북한이나 중국이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우리의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경제적 선진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언론의 수준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일찍이 언론이 지금과 같이 부패하고, 신뢰를 받지 못한 시대가 있었던가? 발행 부수를 자랑하고, 권위를 내세우는 언론들이 가짜뉴스를 남발하고, 무책임과 무지한 보도에 대한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언론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현상을 마음대로 호도하고, 그에 대한 평가도 제멋대로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오죽하면 언론중재법이라는 것을 만들겠는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언론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자질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옳다. 중계방송의 볼륨을 끄고 싶을 때가 있지만 우리의 언론에 비하면 스포츠 중계방송은 칭찬할 만하다. 국민의 수준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언론쓰레기 기레기들은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어떤 억압과 불이익도 감내해냈던 우리 언론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사회가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배가 고팠던 옛날에는 국가권력에 의해 언론이 굴복한 적은 있었지만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데도 정론직필(正論直筆)은커녕 언론 스스로가 ‘타락의 자유’에 빠져있다. 잡초는 모진 발길에도 일어서지만 병든 나무는 저절로 썩고, 땅까지 오염시킨다. 올림픽 메달보다 더 소중한 것이 스포츠 해설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언론이다. 수준 높은 시청자는 엉터리 해설가를 용납하지 않고, 현명한 국민이라면 기레기가 난무하는 언론들에게 속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정규 언론은 고사하고, 정체불명의 믿지마 유비(流蜚)통신에게도 쉽사리 현혹되는 국민들이 그렇게 많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참 갈 길이 멀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나이 들어 꼰대 노릇하고 싶지 않지만 저질스러운 언론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분수도 모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려워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