搏棗謠박조요 대추 서리
李 達이달(1561-1618)
隣家小兒來撲棗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어 대추를 털어대니
老翁出門驅小兒◎ 늙은이 문을 박차고 나와 꼬마들을 쫓아낸다.
小兒還向老翁道 개구쟁이들이 도망하며 노인더러 하는 말이
不及明年棗熟時◎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려나 봐요.
이 시는 앞 시와는 달리 가볍고 유쾌한 풍속도 같습니다. 撲은 ‘치다’ ‘때리다’인데 여기에서는 대추를 ‘털다’가 좋습니다. 농촌에서 농작물이나 가축을 훔치는 행위를 ‘서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큰 도둑질이 아니라 귀엽고 앙증맞은 좀도둑입니다. 대추털이는 ‘은행털이’가 아니라 대개는 주인이 눈감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노인은 좀도둑들을 악착같이 쫓아내니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棗는 대추, 謠는 민요 동요입니다. 마치 동요와 같이 밝고 유쾌한 시입니다. 漢詩가 늘 그렇게 무겁고 심각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隣인家가小소兒아來래撲박棗조
隣家는 이웃 집. 여기에서는 동네라고 하는 것이 더 정겨워 보입니다. 小소兒 어린이, 아이, 꼬마, 개구쟁이. 來 와서. 여기에서는 떼지어서 왔으니‘몰려와서’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撲은 때리다, 털다. 여기에서는 이들의 개구쟁이들이 터는 짓을 지속적으로 하고, 다음 노인 행동의 원인이 되니‘털어대니’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棗는 대추.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어 대추를 털어대니’
老노翁옹出출門문驅구小소兒아
老翁은 늙은이. 한 글자만으로도 늙은이라는 뜻이 충분하므로 한 글자는 생략하는 것이 좋습니다. 出門은 ‘문을 나와’이지만 아이들을 쫓아내는 행동이므로 ‘박차고 나와’라고 하면 원시보다 더 생동감이 넘칠 것입니다. 마침 앞에 ‘박조’라는 시어가 있어 재미 있습니다. 驅는 쫓아내다. 이왕이면 ‘쫓아낸다’라고 옮겨서 현장감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小兒는 앞에서 아이들이라고 했으니 여기에서는 ‘꼬마’라고 해서 변화를 주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늙은이 문을 박차고 나와 꼬마들을 쫓아낸다.’
小소兒아還환向향老노翁옹道도
還向은 도망가며 ‘돌아보는’것이며 道는 ‘말하다’라고 풀이합니다. 이 시에서는 小兒가 세 번 나오는데 똑 같은 말로 옮기는 것보다는 아이들, 꼬마, 개구쟁이라고 각기 다르게 해 보았습니다. 그에 따라서 대추서리꾼들의 다양한 모습이 전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번역시가 원시에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시의를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번역은 지나친 간섭일지 몰라도 어쩌면 원시를 능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老翁도 이번에는 ‘노인’이라고 옮겼습니다. ‘개구쟁이들이 도망하며 노인더러 하는 말이’
不불及급明명年년棗조熟숙時시◎
不及은 미치지 못하다. 明年은 내년. 熟은 익다. 時는 대추가 익을 때. 이것을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면 시가 아니고,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 노인네가 대추 좀 따먹기로서니 무얼 그렇게 야박하게 구느냐?’라는 개구쟁이들의 짖궂은 의도를 옮겨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개구쟁이 애들의 말을 빌려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려나 봐요.’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자를 옮기는 것과 시를 번역하는 것은 이렇듯 차이가 있것만 직역을 고집하는 시 번역이 대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