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가 위험하다.

by 김성수

내가 사는 흥화아파트는 공주에서 가장 젊은 아파트이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산다. 아파트 주변이나 놀이터에는 늘 어린애들과 젊은 부모들로 활기가 넘친다. 전에 살았던 아파트는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표정이 무거운 노인들만 점잖았다. 노인들이 많으면 조심할 일이 한두 가지 아니다. 매사에 예의범절에 신경써야 하고, 소문과 구설수에 조심해야 한다.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인지, 정이 많아서인지 유난스럽게 정치와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눈과 귀가 어두우면서도 자기 생각만 옳고, 세상 일에는 통달한 줄 안다. 젊은이들이 많으면 그런 것에서 훨씬 자유롭다. 아파트에 노인네들이 많지 않으니 경로당은 늘 문이 닫혀 있다. 오죽하면 나보고 노인회장을 하라고 했을까?

아파트를 거닐다 보면 꽤 나이 들어보이는 엄마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손주 보는 할머니는 아닐 것이고 - 혹은 턱없이 젊어 보이는 할머니도 있겠지만 - 사십이 가까워 보이는 엄마라면 아무래도 노산(老産)일 것이다. 그나마 막내라면 좋겠지만 어딘지 어설픈 엄마의 모습이 초산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애기는 거의 동생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요즈음 非婚(비혼)주의자들이 늘어나고, 둘이서만 잘 살자는 부부들을 생각하면 老産母(노산모)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여간한 결심이 아니라면 그 나이에 애를 낳기 어려울 것이다. 나도 자식들이 결혼을 않고, 애를 낳지 않겠다고 나선다면 애써 말릴 자신이 없다. 저 하기 싫은 결혼을 강요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 같은 사회풍토, 교육여건에서 웬만한 재력도 없이 代잇기를 강요한다면 자식들을 괴롭히는 일이다. 죽은 조상 무서워 산 자식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실제로 지금 출산을 앞둔 며느리에게는 代잇기를 요구하지 않았고, 딸에게는 결혼을 닦달하지 않아서인지 이제야 겨우 노처녀를 면하게 되었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인구절벽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 걱정이 크다. 지금처럼 경제적인 유인책만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결혼을 거부하고, 애를 낳지 않는 풍조가 어디 돈만의 문제인가?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크겠지만 그보다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향락주의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더 본질적인 원인이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구절벽은 해소될 수 없다. 우리의 경제는 일찍이 인구감소를 겪어온 서구사회 못지않은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런데도 서구사회보다 더 큰 인구위기가 닥친 이유는 그들보다 더 심각해진 개인주의, 이기주의, 향락주의가 만연한 데에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의 인구밀도가 세계적이었다. 그래도 애를 낳으면 재산이다, 제가 먹고 살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구를 억제하는데 골몰하였다. 최근 급작스런 물질적 성장은 정신적인 빈곤과 타락을 불러왔다. 오랜 봉건체제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갑작스런 민주주의,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는 결국 오늘날과 같은 비혼주의와 출산거부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경제성장은 풍부한 노동력이 바탕이 되었던 사실을 젊은이들이 알 턱이 없다. 설령 안다 해도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젊은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만약에 물질적인 출산장려책이나 결혼 유인책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경제회복으로 자연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경제회복이 되더라도 인구위기는 해결되지 않는다. 섣부른 물질적인 출산장려 대책보다는 물신주의나 향락주의 풍조를 차단하는 국민정신 개혁이 더 중요하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는 관심이 없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이라면 설령 결혼을 하더라도 자신의 행복과 편리를 위해서 애를 낳고 기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인구절벽 위기는 향락과 편리 추구와 막대한 학비와 치열한 경쟁사회 풍조에서 온 것이다. 지금처럼 자식 양육과 교육에 허덕이다 보면 노후대책마저 세울 수 없을 것이고, 자식 교육이 그렇게 어렵다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는가? 산부인과는 물론 유모차가 위험한 시대이다.

아파트를 걷다 보면 휴지가 떨어져 있거나 여기저기 화단, 잔디밭을 뭉개고 난 샛길이 눈에 거슬린다. 아마도 제멋대로 자란 애들의 짓이겠지만 처음 보는 노인한테 꼬박꼬박 안녕하세요?라고 해맑게 인사하는 애들을 보면 그런 자잘한 짓들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젊은 부부가 애들 두셋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크다. 고물고물한 애들을 보면 예쁘기도 하지만 밝은 우리의 장래를 보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그래서 가끔은 그 부모를 칭찬하면 분위기가 한결 좋아진다. 그러나 둘이서만 잘 살자는 젊은 부모는 알아볼 수조차 없어 답답하다. 할 일 없는 노인네의 기우라고 할지 모르지만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기껏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회를 생각하면 더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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