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백두산!

by 김성수

백두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정서는 차라리 신앙에 가깝다는 점에서 독도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백두산을 민족의 聖山성산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국경定界碑정계비는 18세기에야 세워졌고, 그것도 정상 天池에는 올라보지도 못했다. 백두산과 天池천지가 민족의 聖地성지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정상 천지 너머에 정계비를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백두산 정상에 가보지도 못하고 그 아래에 아무렇게나 정계비를 세운 우리 선조들이 과연 백두산에 대한 소유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게 한다. 그나마 원래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여 필경에는 백두산 天池천지와 間島간도를 중국에 내주고 말았다.


그런 실마리를 저지른 부끄러운 우리 역사를 통렬히 반성해야 옳건만 우리는 걸핏하면 간도협약을 한 일본만 욕하기에 바쁘다. 내 탓은 모르고 남 탓만 하는 것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반성이 없다면 선조나 후손이 다를 바 없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런 바보짓을 영토욕심이 없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고 자랑한다면 푸줏간에 매달려 있는 소가 웃을 일이다. 국제정세에 어두웠다거나 영토의식이 없었던 무능한 조선왕조였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당시 백두산 정계비를 협상하던 중국 측 대표가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비웃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서구열강들은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 가는 곳마다 경계말뚝을 꽂고 다닐 때에 우리는 민족의 聖山에 정계비 하나 제대로 챙길 지각이 없었다. 그러니 그것은 분명히 우리 선조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후손들은 백두산에 대한 수호의지가 어떨까?


지금이야 백두산이 북한과 남의 땅에 있으니 당면한 문제가 아니지만 통일 후의 백두산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선조들이나 다를 바 없는 후손이다. 잘 생각해 보면 고구려와 발해 이후 우리가 백두산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실증은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통일 후에 우리가 백두산을 민족의 聖山으로 모시기는 고구려 발해 영토를 회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옛날 ‘우리의 맹세’에 어린 학생들은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자’라고 외어댔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실이 그렇게 녹녹찮은 일이었다.


북한 정권이 무너져 통일이 된다고 해도 백두산 天池천지의 절반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천지의 나머지 절반도 북한이 중국과 담판에 의하여 비로소 확보한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 공산당 정권이 무능한 조선왕조보다는 나았던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통일이 되어도 지금 이상의 백두산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일성 이상의 성과를 거두려면 국력의 신장과 외교적 능력과 함께 역사적 근거가 될 만한 史料사료, 증거물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우선 단군신화의 太白山태백산이 지금의 백두산이라는 근거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天池천지의 형성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밝히고, 백두산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쌓아두어야 우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정부의 외교 국방 못지않게 국민들, 학자들의 학문적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백두산이란 이름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눈이 덮여 꼭대기가 하얀 ‘백두산’은 해발 수천 미터가 넘으면 어디에든지 있을 수 있으니 그 고유성이 희박한 보편적인 명사이다. 백두산이 ‘天池천지를 이고 있는 우리 민족의 발상지’라는 근거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하다. 그에 비해서 중국은 백두산에 대해 長白山장백산이라는 기록을 우리보다 먼저 확보하고 있다. 그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도 많이 축적되어 있다. 언젠가는 중국과 백두산을 놓고 국경분쟁을 벌여야 할 텐데 그때를 대비하여 최소한 장백산을 능가하는 백두산의 기록과 근거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백두산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이러한 구체적 노력이 부족하고, 매우 감상적이라는 생각이다.


백두산에 대한 우리의 신앙적 감정은 백두산에 대한 소유의식을 분명히 하는 원동력이지만 그것은 우리만의 믿음이어서 대외적으로 영토를 주장하는 객관적 근거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스라엘의 신앙적 감정인 시온이즘은 서방의 지원을 받아 수천 년 동안 잃어버렸던 터전에 그들의 神話신화를 재현했지만 그들은 시온이즘에 대한 공신력 있는 객관적인 사료,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이에 비할 때 백두산에 대한 우리의 능력과 열정은 단군신화와 백두이즘을 재현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중국은 동북공정을 적극 추진하여 이 지역을 역사적, 학술적으로도 공고히 선점하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광개토왕비를 찾아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비문을 변조했다고 한다. 통일 후에 중국과 백두산 성지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우리도 역사적 학술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학계에서는 단군신화, 고구려와 발해사, 백두산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백두산이 중국의 역사에 편입된 역사는 길지 않으므로 어차피 백두산에 대한 사료증거는 중국도 충분치 않다. 그러나 우리가 백두산에 대한 연구나 관심이 지금 같다면 중국과의 백두산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단군신화만으로는 백두산을 우리의 성지로 삼을 수는 없으며, 검증되지 않은 불함문화론(弗咸文化論)이나 환단고기, 감정적인 백두이즘만을 가지고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으로 확보할 수는 없다. 백두산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도 없이 기껏 중국의 눈치나 보면서 구경거리나 삼는다든지 민족의 성산을 다짐하는 열정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섯부른 백두산 열정은 자칫 중국의 경계심이나 민족적인 통한만을 남길 뿐이다. 북한정권이 백두산혈통론을 내세워 세습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邪術사술로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백두산에 대한 막연한 열정은 북한 정권의 백두산 혈통론보다도 못하다. 적어도 그들은 백두산의 절반을 확실하게 확보하여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도 없이 통일 후에 백두산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동북공정으로 만반의 준비를 해 둔 강대국 중국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냉철히 생각해 보자.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백두산을 차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중국과 맞서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으로 삼을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 동족인 북한마저도 감당할 민족애도, 포용력도 없다면 백두산은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조선의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보다는 나은 후손의 비상한 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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