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잘 못 지어 고생하는 돌섬.
獨島독도는 글자대로 풀이하면 홀로 외떨어진 絶島절도이다. 그러므로 지구 어디에서든지 있을 수 있는 평범한 보통명사이다. 東海동해도 그렇지만 獨島독도라는 이름에도 고유성의 개념이 부족한 점이 뼈저리다. 고유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차별성이 약하다는 뜻이고, 이것은 대외적인 명칭으로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강화도, 울릉도- 등이었다면 훨씬 고유성, 분별 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獨島독도는 세계 어디에서도 있을 수 있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름이라서 차별성에서 일본이 말하는 竹島죽도만도 못하다. ‘대나무 섬’이 ‘홀로 떨어진 섬’보다는 차별성이 강하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영토를 우리는 왜 그렇게 차별성이 없는 이름으로 지었을까? 당연히 우리 선조들이 처음부터 獨島독도라고 부르지 않았다. 섬이 바위로만 되어있으니 울릉도 어민들은 ‘돌섬’, ‘독섬’이라고 불렀다. 1938년 발간된 <조선어사전>에 ‘독섬, 石島’로 나와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돌’과 ‘독’은 말뿌리가 같은 고유어이고, 발음도 비슷하여 어설픈 한문쟁이들이 ‘독(石)’을 ‘獨(홀로 독)’이라고 바꾸지 않았나 싶다. 그 이전에 프랑스 군함이 독도를 발견하고 지도에 그려 넣은 이름이 ‘돌섬’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약에 ‘돌섬’이라도 지켜냈다면 명칭의 고유성이 확보되어 좀 더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돌섬을 獨島독도라고 바꾼 어설픈 지식인들이 원망스럽다. 섬이 온통 바위 덩어리인 점으로 보아 돌섬이 대나무 한 뿌리도 없는 竹島보다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盆栽분재도 아닌데 바위 투성이 섬에 ‘대나무 섬’은 전혀 당찮은 이름이라서 일본 竹島죽도의 허구성을 지적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독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과거 우리가 영토개념이 부족했던 데에 그 단초가 있다. 멀쩡한 울릉도를 조선시대에는 지키기 어렵다고 해서 무책임한 空島공도정책을 펴 스스로 영토임을 포기했었다. 그 사이에 일본이 울릉도를 점령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울릉도를 비워두었을 때 일본 어부들이 무상출입하는 꼴을 보지 못해 안용복이란 어부가 일본에 가서 두 차례나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다짐받아온 애국적인 의거를 조정에서는 포상은커녕 엄벌에 처하는 어처구니없는 짓도 했다. 적어도 국토방위 열정으로는 조선역사상 충무공 말고는 일개 어부인 안용복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對馬島主가 조공을 바치고, 일본보다 부산이 더 가깝지만 그것을 차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려말, 조선초에 세종대왕 때에 몇 차례 대마도 정벌을 했다고 하지만 단기간에 국지적인 토벌작전에 그쳤을 뿐 지배할 의지는 없었다. 그나마 제주도를 지켜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명백하게 우리 땅인 독도의 이름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독도는 우-리의 땅’이라는 노래 가사는 우리들만의 노래이다.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정복한 것을 독도까지 정복한 것으로 일본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제적으로는 독도를 일본의 의도대로 국제분쟁지역으로 끌려갈 공산이 크다. 그들의 논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힘을 무시하고 약자인 우리 편을 들어줄 순진한 나라는 많지 않다. 냉철히 생각해 보면 안용복 사건에서 보다시피 조선은 독도에 대한 영토의식이 없었다. 독도에 대한 영토의식이 없기로는 일본도 마찬가지였으니 독도에 대한 영토분쟁은 근대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독도를 우리 땅으로 실현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우리의 독도 주둔에 대해서 어이없게도 일본은 자기들의 땅을 강탈당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독도를 강탈한 것은 일본이 먼저였다. 독도는 분명히 울릉도에 가깝기 때문에 명백한 우리의 땅이 맞다. 그러나 주인이 독도를 지킬 힘과 의지가 없었으니 강탈이라기보다는 도난당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멍청한 주인의 물건을 영악한 도둑이 훔쳐간 것이다. 그리고 도둑이 잡혀간 사이에 정신차린 주인이 잃었던 독도를 다시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정신차린 주인에게 감옥에서 출소한 도둑이 장물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꼴이다. 우리한테는 얼토당토않은 일이지만 국제 영토분쟁을 피할 수 없다면 노래만 부를 것이 아니라 이를 대비한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분쟁에 대비한 합리적, 법리적 논리와 학술적 근거를 철저히 마련해야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독도의 명칭인 것이다. 이런 사정을 덮어두고 애국심이나 감정에 의지하는 독도 지키기는 합리적인 대안이 아니다. 어떤 대통령은 정치적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난데없이 독도를 방문하여 독도를 모독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기 되었으니 무능한 조선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인가, 아니면 독도를 일본에 넘겨줄 셈인가?
일본과 외교적 마찰이 심한 ‘東海’ 동해라는 이름도 우리나라 동쪽에 있다는 의미로 그 개념 기준이 ‘상대적인 방향’에 불과하다. 지구의 양 극점에서는 방향의 개념이 없다. 左右좌우는 보고 있는 위치에 따라 뒤바뀌며,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말하는 西海서해가 곧 東海동해이다. 그래서 방향을 말하는 서해보다는 고유색깔을 나타낸 黃海황해가 구별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동해도 독도와 마찬가지로 영토 표기의 이름으로는 문제가 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고유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구별, 차별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東海동해는 日本海보다 객관적 차별성이 약하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동해와 독도는 그 개념이 모호한 이름이다. 이름이란 대표성과 구별성이 있어야 부르기에 좋은 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분명히 밝힌 대한해협이 객관적인 이름으로서 쓰시마 해협과 대립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백두산, 서해, 동해와 독도가 국제적인 통용어로써 가지고 있는 약점이다. 동해로 부르는 국제사회에 야속하고 서운한 감정을 호소하기보다는 이름의 원리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아무래도 세계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東海동해와 獨島독도라는 상대적 개념으로는 日本海와 죽도라는 고유적 개념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名分명분이란 말도 있듯이 이름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이에 대해서 소홀히 한 역사가 너무 많다. 더구나 동해를 노골적으로 일본해로 부르는 데에도 말 한마디 못하는 정부는 조선조정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