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유감

동아시아 성조기의 나라를 아시나요?

by 김성수


역사의 기록에 있는 東夷동이를 우리 민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말을 만든 중국 사람들의 기준으로 말하면 중국의 太行山태항산 동쪽이 山東이고, 산동성에 있는 泰山태산 동쪽부터 東夷이다. 그러니까 산동성 동부는 물론이고 중국 동부도 모두 東夷에 포함된다. 동이의 원래 의미는 어느 한 종족 이름이 아니라 중국 동쪽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이름이었다. 다만 <삼국지>의 동이전에는 우리 민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 商상(殷은) 나라의 주류는 산동지역의 東夷동이였다. 그러니까 동이는 원래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이를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하여 商나라까지 우리 역사라고 한다면 억지에 가깝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보다 나을 것이 없는 일이다. 漢字한자가 東夷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해서 우리 민족의 발명품이라고 한다든지, 공자가 東夷로 가고 싶다고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로 오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든지, 심지어 공자가 우리 민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동이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속 좁은 중국인들의 흥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솔함이 더 문제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은근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나 거꾸로
국수주의적 발상이 작용하였는데 이것도 역사왜곡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대주의 건 국수주의 건 모두가 역사의 진실을 해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다.

오랜만에 우리를 칭찬한 말이라서 흔히 스스로 자랑삼아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랑삼아 드러낼 말은 아니다. 그들의 의도를 짚어 말하면 ‘야만인들 중에는 그래도 꽤 예의를 차릴 줄 안다’라는 오만함이 들어있고, 더 생각하면 자기들의 말을 잘 듣는 ‘귀여운 야만인들’이라는 중국인 특유의 자만심이 깔려있다. 이러한 중국을 가장 혹독하게 괴롭힌 외적은 북방의 흉노였고, 그에 비하면 동방의 우리는 가장 순종적이었던 양순한 이민족이었다. 역사상 고구려를 빼놓고서는 중국에 공격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공격은커녕 삼국시대에는 경쟁적으로 중국에 충성을 바치기에 여념이 없었고, 중국에 아첨하여 동족을 모함하고 공격하기에 골몰하였다. 신라가 삼국의 승자가 된 것은 굴욕적인 외교의 성공이었다. 그것은 삼국의 통일이 아니라 동족의 상실이었으니 결코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다. 흉노에 시달리던 중국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위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명성을 얻는 데에는 조선시대에 국력을 기울여 확립한 성리학의 禮學예학이 한몫했다.

조선의 잘난 선비들이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내세운 것이 예학이라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는 과학문명과 산업혁명이 진행될 때에 기껏 제사 지내고, 상복 입는 문제를 가지고 국가의 운명을 걸고 당쟁을 하였으니 통탄스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 비극적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예학으로 성리학을 꽃피웠다거나 주자를 능가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금도 답답하고 슬픈 역사는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동방예의지국의 명예가 아니라 차라리 朝鮮破滅之國조선파멸지국으로 만든 망국의 수치였다 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가르쳐서야 무지한 역사교육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중국인은 걸핏하면 우리에게 ‘東方’이라는 접두어를 붙여주기 좋아했는데, 거기에는 우리에 대한 친밀감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들과는 같을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를 그어놓은 우월적 발상이었다. 그것을 우리가 스스로 내세워 자랑삼는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지금 옛날의 중국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온통 미국을 닮지 못해서 안달이다. 국어를 젖혀두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행세를 할 수 있고, 미국을 따라 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미국에 의지하지 않으면 국가안보나 경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면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던 조선왕조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국민이다. 지금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 부끄러운 사대주의적인 행동들이 차고 넘친다. 그것도 모자라 멀쩡한 서울의 한 복판에서 대형 성조기를 흔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미국의 한 주가 되지 못해서 한이 맺힌 사람들 같다. 우리의 국방력과 지정학적 특성을 몰라서도 아니고, 또는 구태여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우리의 주권은 어디에 있으며, 미국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나라인가가 궁금하다. 이래도 후세에 대한민국이 떳떳한 독립국가였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래도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래도 언제까지 남북으로 갈라져 주적 논쟁이나 하고, 색깔론으로 남북대화와 평화통일의 싹을 자르고, 전시작전권도 없이 외세에 의존하여 동족과 극한 대립을 해야 하는가?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 이제는 極東星條之國극동성조지국- 동아시아의 성조기의 나라라도 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주역은 아니더라도 부디 역사의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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