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4

제주도의 돌담

by 김성수

제주도는 돌이 많아서 삼다도이지만 돌 중에서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돌은 팥알만 한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있는 화산석이다. 돌하르방도 이 돌을 깎아 만든 것이고, 집집마다 둘러있는 담장도 이 돌이다. 육지의 화강암은 구멍이나 빈틈이라고는 도무지 없어 단단하기는 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주춧돌이나 장식돌로 환영받지만 단단한 만큼 차가운 돌이다. 모서리에 살짝만 닿아도 크게 다칠 것이고, 비나 눈이라도 오면 미끄러워 노인들이 낙상하기 십상이다. 제주도 화산석은 구멍 투성이라 빈틈이 많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손으로 만지면 부서질 듯도 하고, 들어봐도 늙은이 손발처럼 가볍다. 밟아도 미끄러지지도 않고 발에 착 달라붙어 친근감마저 든다. 구멍돌은 속이 비어있는 듯하지만 비었다고 그냥 허술한 돌은 아니다. 화강암처럼 단단하지는 않겠지만 웬만한 돌 노릇은 다 한다. 돌의 구멍은 돌을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할지도 모른다. 속이 빈 대나무는 그 유연성과 탄력으로 웬만한 나무보다 더 쓸모가 있다. 전봇대의 속은 비어있어 더 튼튼하다. 인체도 알고 보면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하나의 구멍으로 뚫려있다. 그 구멍이 막혀있으면 병이 생긴다. 그 구멍을 막고 들어찬 종양이 암이다.


제주도의 담장은 이 허술한 구멍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 담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깎거나 다듬지도 않고, 귀도 맞추지 않고, 그냥 애들이 소꿉놀이하듯 적당히 쌓아 올린 모양이다. 담이라야 허리보다 낮아서 안팎이 따로 없는 형편이지만 높아봤자 돌 틈 사이가 헤벌어져 조금만 눈을 가까이 대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집안이 다 보여도 좋다는 제주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꿍꿍이가 없다는 뜻일 게다. 키를 훌쩍 넘는 담장을 빈틈없이 쌓아 올리고서도 그 위에 꼬챙이를 더 꽂아야 마음이 놓이는 육지 사람들이 각박하고, 폐쇄적이라면 엉성한 구멍돌을 포개놓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제주 사람들은 여유있고, 개방적이라고 할 것이다. 구멍돌담은 손으로 밀어도 금방 허물어질 것 같아 만져보기조차 조심스럽다. 물 샐 틈마저 없는 마추픽추의 정교한 성벽은 고사하고 허물어진 삼국시대 토성보다도 더 허술하다. 그런데도 그 많은 태풍에도 멀쩡한 것을 보면 보기보다 견고한 것이 틀림없다. 건축물도 속을 적당히 비워둬야 지진에 잘 견딘다. 그래서 지진이 많은 지역에서는 건물 중심부를 채우지 않고 비워둔다. 벽면도 안에는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야 더 튼튼하다.

구멍돌과 돌 틈으로 바람이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돌담을 보면서 ‘비움의 도리’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실속을 챙기기에 바쁘지만 차면 곧 기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만약에 비움이 없다면 방도 없고, 곳간도 없고, 악기도 소리를 낼 수 없으며, 자동차 타이어도 달릴 수 없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감동도 없고, 더 채울 수도 없으며, 끝없는 탐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제주의 엉성한 돌담은 제주인들의 공간과 비움의 도리를 구현한 것이리라. 道家에서는 비움을 虛와 空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도가와 불가의 지극한 경지이다. 虛室(허실)은 천지의 산실이고, 空谷(공곡)은 천지를 채운다고 했다.

제주의 구멍돌은 제주도의 산물이고, 헤벌어진 돌담에는 제주인의 심성이 담겨 있다. 돌이 많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제주도의 자연적인 조건이 불리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제주인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 제주인들은 그런 불리한 여건을 슬기롭게 대처했다. 육지의 빈틈없는 담장이나 성벽 대신에 구멍돌을 비움과 공백의 원리를 살려 돌담을 쌓았다. 제주의 돌담은 외부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박한 경계표시에 불과하고, 짐승의 출입을 막는 것으로 족한 듯하다. 도둑 없는 제주에서는 육지의 담장처럼 높이 쌓아 삼엄하게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육지의 담장처럼 두텁고 견고할 필요가 없었다. 구태여 돌담을 쌓겠다기보다는 거친 땅에서 파낸 돌을 걷어내다 보니 돌담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귤의 수확철이라 귤밭 구멍돌담 위로 가지가 찢어질 듯 귤이 길을 향하여 늘어져 있다. 입만 벌려도 저절로 목구멍으로 들어갈 것 같지만 누구 하나 손 대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오래 지켜봐도 귤밭을 지키는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육지 객인 나는 두어 개쯤 따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겠지만 귤밭 주인의 관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여기에도 길고양이, 유기견이 적지 않지만 육지처럼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참새처럼 겁이 많고 약삭빠른 놈도 없지만 제주도의 참새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느긋하게 모이를 쪼고 있다. 지금이야 보기 어렵지만 옛날에는 대문도 없이 막대기만 걸쳐 놓았다고 한다. 많아야 세 개인 막대기도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안에 사람이 없다는 표지에 불과하고, 사람이 있으면 기둥만 달랑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신뢰의 표지이다. 여기라고 도둑이 없으랴만 제주도 3무는 도둑, 거지, 대문이라고 하더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제주 사람들과 접촉이 많지 않아 아직 이렇다 할 제주도의 인심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구멍돌과 낮고 헤벌어진 돌담을 잔뜩 넘어와서 익어 있는 귤을 보면 제주 사람들의 심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제주도의 여유넘치는 길고양이, 유기견, 참새, 산비둘기를 만나보면 알 일이다. 그네들이야 제주도 사람들하고 같이 살아왔으니 어디 허튼소리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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