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3.

할망산과 한라산

by 김성수



백두산과 함께 한라산은 우리 국토의 표지이다. 북으로는 백두산이고, 남에서는 한라산이다. 백두산이야 원래 단군의 고향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한라산이야 본래 바다 건너 남의 땅이었으니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백두산이 아들이라면 한라산은 새로 맞은 귀여운 며느리랄까? 그러나 그 높이나 규모에서는 며느리는 역시 아들만 못하다. 천지가 지하에서 물이 솟는 하늘 아래 거대한 호수임에 비하여 한라산 백록담은 막힌 분화구에 빗물이 모인 조그만 못이어서 수심도 얕고, 둘레가 기껏 수백 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잘난 아들은 전쟁포로가 되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한 며느리인가? 흰 사슴이 내려와 물을 먹던 곳이라 해서 백록담(白鹿潭)이라고 했다지만 제주도에는 사슴이 없어 육지에서 노루를 이주시켜 백록담을 실현시켰다. 50년 전에는 백록담에서 텐트 치고, 야영도 할 수 있었다. 백록담 물에 쌀을 씻고, 주변에 구상나무 등걸을 주워다가 밥도 지어먹었으니 흰사슴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이다. 지금은 먼 발치에서 백록담을 내려다볼 수 있을 뿐이다.


한라산(漢拏山)이라는 글자를 풀이해 보면 ‘하늘 높이 솟아서 하늘을 끌어당기는 산’이다. 漢이 물이라면 하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은하를 강(漢)으로 비유한 것으로 풀이해야 가능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런 사치스러운 이름은 후세 육지에서 건너온 한문쟁이들의 억지 소행일 가능성이 많다. 2천 미터도 안 되는 산이 하늘을 끌어당긴다는 말은 그들이나 가능한 허풍이다. 원래의 제주인들이 그렇게 방자하고 까다로운 이름으로 불렀을 리 없다. 생각건대 제주 사람들의 소망과 꿈이 담긴 고유한 산 이름이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 고유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제주 사람들의 꿈을 찾고, 제주를 바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일이다.


제주도는 크다 할 수 없는 섬이지만 수많은 신화와 전설, 설화를 품고 있다. 제주에서는 무속이 매우 성행했는데 대개의 신화, 전설은 대개 무당굿풀이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 무당굿은 산과 바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제주인들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변화무쌍한 한라산 기후와 험난한 바다는 제주인에게는 넘기 어려운 자연의 위력이다. 그런 사정은 옛날일수록 더 심했다. 육지에서는 유교 성리학과 기독교의 미신타파로 무속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제주도는 그런 간섭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무속이 성행할 수 있었다. 무속의 성행은 풍부한 신화와 전설을 만들고, 전승시켰다. 그래서 육지에서는 없어진 신화와 전설이 제주에서는 지금까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


백두산에 환웅이 내려왔다는 신화는 있지만 백두산 생성 신화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제주에는 한라산 생성 전설도 그 안에 있는데 한라산을 만든 이는 설문대할망이다. 거인 설문대할망은 제주도에 산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흙을 치마폭에 담아 산을 만드는 역사를 벌였다. 섬 가운데에 큰 산을 쌓은 것이 한라산이요, 구멍 난 치마폭에서 샌 흙이 360개의 오름이 되었다. 그러니까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은 설문대할망의 작품인 셈이다. 그렇게 믿는 제주인들은 그 산을 ‘할망뫼’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할망’이란 말은 물론 할머니란 뜻이지만 ‘神女’란 의미도 있다. 열다섯 살 처녀 무당도 할망이다. 할망뫼에는 제주 사람들의 꿈이 쌓여있고, 신앙이 스며들어있다.


지금도 제주인들은 한라산 정상을 할망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 만약에 이런 할망산을 뒤늦게 육지에서 온 양반들이 멋대로 그와 음이 비슷한 한라산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제주인의 꿈과 신앙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지금의 제주 한자 지명, 명칭 중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엉뚱한 지명이 많을 것이다. 漢拏山처럼 한자화된 지명이 사물의 진실을 왜곡시킨 것이라면 제주에서 우리 고유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제주의 참모습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지명뿐 아니라 제주 방언에는 사라진 고어가 많이 남아있어 우리 국어 연구의 보고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신앙이다. 수많은 무당굿과 굿당은 할망산과 그 오름에 연결되어 있다. 무당뿐 아니라 새벽에 한라산을 향해서 정성스럽게 기도드리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그 노인의 큰절에는 감히 하늘을 만져보겠다는 교만이 아니라 할망을 향한 신앙이 들어있을 것이다. 11월, 아래에서는 아직 20도가 가까운데 한라산에서는 빙하 같은 눈이 태양에 눈이 부신데 어찌 할망을 흠모하는 거룩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장담할 수 없지만 이것이 한라산의 본 면목이 아닐까?


남녀 비율은 적절하게 조절되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지만 제주처럼 바다로 나가야하는 어부가 많다면 남자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제주의 사회적 조건은 지속적으로 여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주는 여자가 많은 삼다도가 된 것이다. 남자가 귀하다 보니 여자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남자가 배를 타고 나가거나 돌아오지 못한다면 살림살이는 물론 농사마저 자연스럽게 여자가 맡을 수밖에 없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다 보니 제주는 여성 주도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주의 설화 전설에도 여성신인 할망신이 많다. 그래서 한라산을 만든 것도 설문대할망신이요, 제주신을 지배하는 신도 백주또할망신이다. 흔해터진 제주 하르방은 기껏 문간이나 길목을 지켜야 했고, 제주도 무당인 '심방'도 남자가 다수였다. 할망신은 숭배의 대상이고, 남자 박수무당은 할망신에게 굿이나 드리는 모습에서 제주의 독특한 사회구조를 엿볼 수 있다.


제주 해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육지에서는 잠부(潛夫)인 남자가 물질을 했지만 제주에서는 잠녀가 그 험한 일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찍이 페미니즘이 승리한 것이겠지만 제주여성의 슬픈 역사이기도 했다. 여성이 많아서 여권은 강했지만 그만큼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고, 남자가 귀하다 보니 시앗 설화도 많고, 첩살이 여인의 서러운 민요도 많다. 제주도 이름의 내력을 제대로 밝힌다면 제주 여성의 고달픈 삶이 더 위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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