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노력한 만큼 거둔다’일 것이다. 그것이 진리이건 아니건, 청소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관임이 틀림없다. 만약에 노력이 성공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젊은이들이 성실히 노력할 리가 없다. 교육이란 성실하게 노력하는 정신적 자세를 심어주는 것이 본질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교육이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개인주의와 타락한 자본주의에 의한 이기주의, 물신주의 풍조를 방치, 방조한 것이 그 주요 원인이 아닐까 한다. 나라의 최대 위협인 인구절벽의 문제를 경제적인 면으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젊은이들의 삐뚤어진 가치관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인구절벽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동안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출산율을 면치 못하는 것은 잘못된 대처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젊은이의 건전한 가치관 배양이라고 할 것이다.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신주의는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양심을 타락시키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켜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학교교육이 중요한 것인데 우리 학교교육은 이에 대한 각성이 태부족이다.
우리 실정을 보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의 부적응자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학교의 우수자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열등생이 사회에서 승리자가 되는 일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 교육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성실한 노력 대신에 요행을 바라게 한다거나 사행심을 갖게 한다면 나라는 위험해진다. 학교의 시험문제와 수능시험문제의 객관식 선택형부터 청소년의 사행심을 조장한다. 포크가 수능시험에서 요행을 찍는 상징물이 된 것은 유모어가 아니라 슬픈 비극이다. 도박성 게임이나, 사행심이 작용하는 복권, 스포츠를 빙자한 경마도 건전한 청소년을 병들게 한다. 슬로트머신이나 카지노 같은 도박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젊은이가 주식거래를 한다든지, 가상화폐 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현실을 정당한 경제활동으로 간주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망치는 것이다. 증권거래는 경제적인 유통행위일 수 있지만 성실한 노력으로 실력을 닦아야 할 청소년들이 거기에 빠진다면 마약중독과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젊은이라는 이유로 증권투자나 가상화폐 거래를 막을 수는 없지만 본업을 젖혀두고 거기에 몰두한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생산 활동은 누가 맡을 것인가? 그보다 더 큰 일은 그들이 도박에 성공한다면 정당하고 성실한 노력과 땀의 가치를 비웃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러한 퇴영적인 가치관을 갖는다면 당사자는 물론 우리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그런데 대통령이 젊은이의 일자리 창출은 젖혀놓고 엉뚱하게 주식거래를 권장하고 나선 적이 있다. 나라의 경제 활성화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젊은이의 건전한 가치관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 경제는 한 정권이 해결할 수 있어도 한번 잘못된 교육은 한 세대의 힘으로도 바로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필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성실한 노력으로 얻는 월급만으로 내 집 마련은 요원하다. 그래서 벌어진 것이 이른바 ‘영끌아파트’이다. 영혼까지 팔아서 아파트를 산다니 아파트가 생명보다 더 중요해졌다. 직장의 봉급으로는 가파르게 오르는 아파트를 도저히 살 수 없으니 은행빚을 내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능력이 되고 있다. 아파트값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영끌아파트’는 영혼까지 타버리는 ‘영망아파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위험한 짓을 방치하고, 방조하는 사회는 잔인하고, 무책임하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갭 투자로 재미를 본 젊은이는 성실한 노력의 가치를 모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은행빚으로 아파트 몇 번 샀다 팔았다 하면 평생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서 무엇하러 힘들게 일을 할까? 올라간 아파트값은 내릴 수 있지만 한번 타락한 젊은이의 가치관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최근에 대선 입후보자가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세금 징수를 유예하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가상화폐는 실체가 아니고, 아직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투기성이 매우 강해서 예측이 전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성공과 실패의 폭이 매우 커서 자칫 쪽박을 차기 십상이니 이는 투자가 아니라 암적인 투기가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투자까지는 정당하겠지만 투기까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까지도 이런 위험한 투기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투기에서 성공하면 돈을 얻되 인생을 잃는 것이요, 실패하면 돈도 잃고 인생도 잃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투기행위를 교육과 정책으로 막지는 못할망정 나라에서 장려하고 보호한다면 반도덕적이고, 비교육적이다.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하여 젊은이의 윤리와 장래를 망쳐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염려스러운 일이다.
자고로 투기가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농단(壟斷)이란 말도 투기행위에서 나왔고, 박지원의 <허생전>은 대표적인 투기꾼 이야기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정치적 투기로 대통령이 된 자가 한둘이 아니다. 재벌이나 정치인, 법조인들도 그런 부류들이 많다. 그러나 요즈음처럼 투기가 정당화되고 성행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전에는 전문투기꾼이 따로 있었는데 이제는 투기가 국민적 경제수단이 되더니 급기야 청소년에까지도 정당화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윤리와 자본을 운용할 수 있는 도덕적 양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혐오하고 비난할 자격도 없다. 경제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건전한 가치관 없이 투기가 만연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런데 젊은이들까지도 성실한 자세와 노력을 비웃고 투기에 열중한다면 우리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실로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