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투기공화국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투기가 성행하는 나라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국민성이 본래 그렇다고 한다면 국민이 억울한 일이다. 본래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다투기를 싫어하던 민족이었는데 무모한 투기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기공화국이 된 것은 무분별한 자본주의와 정치적 투기꾼들의 소행이 아닌가 한다. 자본주의는 투자가 본질이요, 투자를 하다 보면 투기에 흐르기 쉽고, 정치 생리상 정치를 하다보면 또한 투기행위를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투기꾼과 정치꾼들은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서 사회와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판돈으로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서둘러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조국 분단에 앞장선 셈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독립정부를 세우면서 민족통일을 포기한 것은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이다. 조국 분단을 막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백범, 간디나 조국통일을 위하여 우리보다 정부수립을 늦춘 모택동을 생각하면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거래행위는 투자(投資)요, 비합리적이라면 투기(投機)요, 아예 포기하면 投棄(투기)라고 부른다. 그가 서둘러 남한만의 정부수립을 한 것은 합리적인 정치행위인가, 무모하고 이기적인 투기인가, 무책임한 投棄인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그가 얻은 것은 대통령이요, 국민이 잃은 것은 조국의 통일이다. 개인의 권력을 얻기 위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조국을 포기한 것은 투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대한민국은 제1공화국부터 투기로 세워진 셈인데 그래도 그를 국부(國父)로 받들어야 할까 싶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은 적어도 나라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몸에 익힌 합리주의자였다. 국민의 항쟁이 거세어지자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여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 양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총칼로도 모자라 전방의 탱크를 몰고 와 쿠데타를 벌이고, 독재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무참히 살륙한 포악한 군사 투기꾼들하고는 사뭇 달랐다.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니 3공화국은 무모한 투기로 세워진 셈이다. 그러나 그는 민족중흥을 이루고, 국민을 먹고 살게 해주었으니 성공한 정치가요, 위대한 지도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삼선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강행한 것은 나라를 부흥시킨 공적을 까먹을 정도의 만행적 투기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멈출 줄 모르는 투기를 하다가 결국은 또 다른 투기꾼한테 암살을 당해야 했다.
전두환, 노태우야말로 권력을 걸고 나라를 팔아먹은 간 큰 투기꾼이었다. 휴전선의 병력을 빼돌려 하극상 반란으로 수립된 5공화국은 우리 사회의 병폐인 한탕주의의 원조였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박판을 벌인 조폭 무뢰배였다. 군사독재로 수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인권유린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두둔한다면 또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반성이라고는 할 줄 몰랐던 희대의 폭력 투기꾼이었다. 그들이 연이어 대통령이 되었으니 우리 사회는 정의가 설 곳이 없었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기꾼이 승리자가 된 불행한 역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신성한 헌법을 무려 4차례나 바꾸는 만행을 저질렀다. 가관인 것은 이들이 죽어서 휴전선에 묻혀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고자 한다니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자들이다. 그런 턱도 없는 발상을 한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조금이나마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원혼들과 분노한 국민들이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은 죄가 커 국립묘지는커녕 ‘죽어 묻힐 곳’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휴전선으로 도피한 것이리라. 정권이 바뀌면 국립묘지로 개선하면 된다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절대 불리한 정치기반을 딛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에게는 정치적인 소신이 분명했기 때문에 투기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는 계층갈등과 사법개혁,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한 대통령이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지만 그의 정치행적으로 보건대 부끄러워해야 할 우리의 역사이다. 포악한 투기꾼은 골프를 즐기면서 천수를 누리게 하고, 나라를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대통령을 탄핵하려 하고, 부정축재자로 몰아 죽게 한 것이 누구였던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비즈니스 투자로 착각한 장사꾼이었다. 포악한 투기는 아니었지만 대운하공사, 사대강사업은 사기적 시대착오였다. 나랏돈을 가지고 약삭빠른 투자로 개인의 부 축적에는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감옥행을 면치 못했다. 그는 물신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하여 투기심리를 부추긴 영악한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치자의 능력도, 준비도 없었지만 아버지의 후광으로 권좌에 올랐다. 그녀는 준비도, 투자도, 투기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었지만 정치적 무지로 인하여 통치자로서 자신의 과오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무능이 얼마나 나라에 누를 끼쳤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직접 돈을 받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고, 그것도 청렴이라고 믿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하기야 돈은 못 챙기고 재주만 넘는 곰은 죄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주만 넘는 어리석은 곰은 애초부터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나라는 온통 대선의 열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듣자 하니 유력한 양강 후보가 모두 치명적 폭탄을 안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 밝혀지면 대통령은커녕 감옥에 가야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투기적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당사자들은 물론 그들을 선택해야 할 국민마저 어이없는 투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나머지 군소 대선 후보자들은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꿈꾸고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투기꾼들이다. 이들은 두 유력 후보자들이 불원간 낙마할 것이라는- 지극히 희박한 가능성에 올인하고 있으니 로또를 차떼기하고 있는 꼴이 아니겠는가?
역대의 통치자들이 투기로 정권을 잡았으니 우리나라가 투기공화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재벌에서부터 기득권, 고위공직자, 복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청소년 젊은이들까지 온통 투기판으로 내닫고 있다. 그러나 더 염려스러운 일은 투기행위를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능력과 권리로 아는 도덕적 해이와 무감각, 무의식이다. 코로나로 세계적 팬데믹인데도 예방접종 거부를 정당한 민주사회의 인권으로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은 제한되는 것’이 올바른 민주정신이라는 사실을 잊는 사람이 많다. 민주주의란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주인이다. 정당한 노력과 성실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다수의 정직하고 선량한 국민을 좌절시킬 수밖에 없다. 투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대해서 처절한 반성과 뼈를 깎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물론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도 그렇다. 특히 기득권층이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 글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투기에 대한 경계와 건전한 가치관 정립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