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사물을 가리켜 일컫는 말이다. 사물을 지정하여 거기에 합당한 이름을 짧은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름이란 그저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 이름은 그 사물의 의미와 상징이 된다. 한번 지어진 이름은 그 사물이 작용하는 환경과 조건에 합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유가의 正名사상이요, 名分論이다. 그리고 정명과 명분은 그 사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옛날의 유생들은 이름을 바로 세우고,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의 꽃이 되었다’라고 했는데 이 시는 서구의 존재론을 담고 있다. 이로 보아 서양의 실존철학에서도 이름을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명분에 편승하여 사람 이름을 성명 철학이란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먹고사는 작명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道家나 佛敎에서는 이름을 매우 경계하였다. 사물의 본질이나 명목, 명분은 본래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의 본질은 無, 空인데 사물에 일정한 이름이 있을 리 없고, 더구나 正名, 名分이란 인간의 헛된 욕심이요, 구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알단 언어로 이름을 붙이는 순간 본질과는 멀어진다고 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본질과는 다른 것이 된다는 말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나 같은 범인으로서 세상의 정명 · 명분을 말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고, 사람 이름 하나도 매우 버거운 일이다. 작명가들은 사람 이름에 의해서 운명이 바뀐다고 하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들 이름도 내가 직접 지어야 했다. 아버님이 자식 이름에 크게 공들이지 않으신 것 같았기에 나름대로 궁리를 해서 애들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아들이 설흔이 넘도록 신수가 신통치 않았다. 마침 성명에 일가견이 있다는 지인이 호언하는 바람에 아들의 이름을 바꾸기로 하였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내 자존심에 손상이 가는 일이었지만 애비가 대충 지은 이름으로 자식의 운명이 순탄치 못하다면 내 죄일 것 같아서 사죄하는 심정으로 일삼아 개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명한 뒤로도 아들의 운명은 별로 달라진 일은 없는 듯싶다. 후에 그 작명가한테 넌지시 따졌지만 적당히 얼버무리는 소리를 잠자코 듣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사람 이름 잘 지었다고 다 잘 될 것 같으면 이 세상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사람의 이름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이름은 그저 부르기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얼마 전에 뒤늦게 손녀를 보았다. 이제야 법적으로 겨우 할아버지가 된 것이니 무능한 장손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꼼짝없이 상 노인네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냥 좋아할 일이 아닌듯 싶기도 하다. 전에는 핸드폰에 손자 · 손녀 사진을 담아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푼수 취급했었는데 막상 내 새끼라니 아직은 사람 몰골도 아니건만 손녀가 밉지 않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이뻐지는 것이 할애비는 역시 푼수를 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늙마에 첫 손자가 아니어서 서운할 바 전혀 없다. 딸보다 못한 아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연히 손녀 이름짓기가 현안 과제가 되었다. 태기가 있은 후부터 손녀 이름을 지어달라는 애들 독촉에 나름 그 요구조건에 맞춰 이름을 짜내 주었다. 그러나 막상 아들한테는 썩 만족한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의견은 참고로 하고 너희들 좋을 대로 하라고 물러섰다. 애들이 몇 개 이름을 역 제안하길래 썩 내키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라떼만 해도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이면 그저 군소리 없이 순종했었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더구나 만약 내 고집을 내세우다가는 손녀 인생까지 책임져야 할 것이니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애들이 한 달 가까이 고심하다가 드디어 이름을 결정하여 출생신고를 했다고 했다. 첫 자식이니 그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나름 고심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이름이 별로 흡족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별 수 없잖은가? 그런데 막상 그 이름을 듣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닌성싶었다. 요즈음은 의미와는 관계없이 글자 획수만 따지는 일본식 작명법이 유행이라서 희한한 이름이 적지 않다. 그런데 막상 내 손녀가 그런 해괴한 이름이라니- 이름에 대해서 별 의견이 없던 나였지만 의미도, 상징도 없는 손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것도 인터넷에 들어가서 지은 이름이라고 하니 애비가 인터넷만도 못한 존재였단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출생신고 전에 애비한테 사전 상의는 했어야 자식의 도리라는 생각이 그렇게 잘못일까? 손녀 이름도 그렇지만 애비 존재가치가 무시되었다고 생각하니 부화가 치밀어 통화 중인 영상 화상에 대고 ‘예끼! 이 고얀 놈!’ 하고 자리를 떠버렸다. 혼자 생각해보니 이렇게 변해버린 세태가 서글프지만 아들은 아들대로 애비가 되어 애비한테 ‘고얀 놈’ 소리를 들었으니 나름 얼마나 놀라고 속이 상했을까?
그깟 이름이 뭐라고- 正名, 名分論에 충실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경솔한 짓을 했을까? 그깟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이름 좋다고 잘 되고, 나쁘다고 못 되는 것도 아닌데- 아비가 자식 이름을 지은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할애비가 철없이 자식과 세태를 못마땅히 여겼구나- 그냥 저희들이 부르기 좋으면 그만인 것을 – 나도 어쩔 수 없는 라떼꼰대가 분명하니 분노할 일이 아니라 그냥 서글퍼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 일이었다. 대체 이름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