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기도

by 김성수


해가 바뀔 때마다 평소와 다른 계획과 각오를 해야 철을 안다고 한다. 그래야 이 사회의 일원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연말연시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다. 날씨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구정을 쇠는 우리로서는 유별난 설날도 아니다. 달력의 마지막 날 그냥 잠을 자면 무언가 허전할 것 같고, 일 년을 시작하는 날이 다른 날과 똑같으면 싱거워서이지, 특별히 유난 떨 이유도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저 달력이 새것으로 바뀌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달력이 바뀌어봐야 며칠만 지나면 마찬가지일 것인데 그게 그렇게 야단스러울 일인가 싶기도 하다. 요즈음이야 코로나 때문에 그런 야단도 없어졌지만 그 전만 해도 까닭 없이 밤을 헤매고, 일몰이다, 해돋이 간다, 종을 친다 해서 법석을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기야 옛날부터 설날은 가장 큰 명절이요, 기념일이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했으니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 깊은 날이었다. 나이도 한 살 늘었으니 마땅히 엄숙하고 가슴 차오르는 희망을 새기는 소중한 날이었다. 이루지 못한 삶을 설계하고, 희망을 가슴에 품어 보는 새해 아침은 떡국이 아니더라도 의미 깊은 날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원래는 지금이 아니라 구정에 했던 일들이다.


그러나 칠십이 넘은 나이로는 신정이건, 구정이건 젊은 날의 라떼와는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 이 나이에 새해 설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길은 틀림없지만 살아봐야 뻔한 길이 아닐까? 남은 여생은 아무래도 지난 세월만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백세를 장담하지만 노령화 시대에 그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욕심이다. 설령 그렇게 오래 살아본들 좋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대놓고 할 얘기가 아니다. 칠십이 넘은 자식, 며느리하고 같이 살 생각을 하는 노인네는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아닐 수 없다. 혼자 살면 된다고 하더라도 노령연금에 의지하고, 사회의 동정을 받아가며 독방에서 약봉지를 부여잡고 외롭게 살아야 한다면 산다는 것이 고통이다. 내 능력으로 건강하게 혼자 유쾌통쾌 살면 좋을 듯하지만 그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내 백 년에 그렇게 될 자신을 갖는 것은 과욕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까지만 사는 것이 살 만한 인생이다. 숨을 쉰다고 인생이라고 할 수 없고, 오래 산들 壽則多辱(수즉다욕)일지언정 勝者(승자)는 아니다. 육체적인 건강보다 더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 정신적 건강이다. 치매는 아니더라도 노탐, 노욕, 고집, 편견, 고정관념, 아집- 이런 정신적 병폐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 노인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정당하고, 당연하고, 진리라고 믿겠지만 젊은이와 자식들에게는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기 십상이다. 노인 유권자들이 젊은이들과 정치적 견해가 유별난 이유는 노인의 지혜가 아니라 눈과 귀가 어두워서이다. 노인들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독재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노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의 동정과 의무감과 아량과 효도 덕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젊었을 때에 노인들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그때 그렇게 한심하고 답답했던 노인이 바로 지금의 나인 것이다.


그런 판에 새해를 맞아서 무슨 가슴 떨리는 희망과 설계를 해야 할까? 젊은이들이야 좋아도 싫어도 당연히 가슴 벅찬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인들도 덩달아 그런다면 분수를 모르는 짓이 아닐까? 물론 늙어서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슈퍼노인들은 여전히 활기 넘치는 새해일 수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해마다 이때만 되면 사람들의 입에 달린 말- 새해에는 호랑이처럼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물론 고마운 말이지만 그것은 농담 섞인 예의임을 알아야 한다. 연식(年式)이 일 년이 더 묵었는데 중병을 앓던 노인네 말고는 더 건강해질 리 없다. 자동차보험도 해마다 보상가가 추락하지 않는가?


보통 노인네들이 새해를 맞아서 바랄 일이 있다면 건강과 행복보다는 의연하게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지만 젊은이가 그런다면 위로의 말이요, 늙은이가 그런다면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노인네의 건강을 진심으로 빌어 줄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인이 활개를 친다면 젊은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요, 자리를 차지하고 제값을 못하면 장애물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면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사실이 분명하니 차분히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죽을 준비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죽는다는 것이야말로 인생 중에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러니만큼 죽을 준비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백세를 장담하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또한 죽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간단히 숨을 안 쉬면 된다. 고승이나 도인들이 죽을 날자를 예언하고, 앉아서 죽었다는 말은 스스로 숨을 끊은 것이 아닐까? 혹은 곡기를 끊고 죽었다는 사람도 적잖다. 그러나 나 같은 범인이야 그럴 자신이 없으니 더 오래 살겠다고 애쓰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더 욕심을 낸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죽을 때 행복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가며 죽었다는 말은 들어봤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새해에 구태여 기도를 한다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준비를 잘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새해 소원에는 가족들의 행복과 건강은 있지만 나의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없다. 다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생이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면 그런 무리한 기도를 드릴 염치가 없다. 신앙심이 약해서인지 합당한 삶을 살았느냐가 문제이지 새해 잠깐의 기도로 결정될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만 짧은 시간으로는 죽음의 준비가 충분치 않을 것이니 앞으로 대략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소원도 욕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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