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 의식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by 김성수

史사를 字義자의로 따져 말하면 中중과 手수가 모여 된 會意회의문자이다. 공정하고 정확한 사실을 손으로 기록하는 것이 史자의 뜻이다. 문자기록 이전을 先史선사, 문자 이후의 기록을 歷史역사라고 하고, 우리는 보통 역사 이후를 사실로 인정한다. 그리고 사실도 事實사실과 史實사실은 구별된다. 事實사실은 있었던 정확한 사실이지만 史實사실은 기록자의 판단에 의한 事實사실의 기록이다. 기록자의 판단은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시대의 판단이어야 한다. 事實사실은 있었던 일이지만 史實사실은 과거의 일에 현재적 가치를 부여한 판단이다. 事實사실과 史實사실이 일치할 수도 있지만 歷史역사의 특성상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역사의 기록자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명감이 투철해야 한다.

만약에 기록자가 시대의 판단을 바로 할 수 없다든지, 특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史家사가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역사를 이루는 구성원도 역사에 대한 가치의식이 없다면 역사를 창조할 능력이 없고, 역사를 책임질 자격도 없다. 그러므로 누가 말하는 것처럼 그저 흘러가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조선의 역사 중에서 자랑할 만한 일이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의식이다. 왕이라 해도 당대의 史草사초-속기록-를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임금이 죽은 뒤에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신뢰도가 높다. 그런데 지금 엄정히 보존되어야 할 국가기록물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함부로 농단되고 있다고 하니 역사의 진행을 역류시키고 있는 만행이다. 비단 위정자나 史家사가만이 역사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국민들도 역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필자는 역사가가 아니라서 우리의 역사를 함부로 말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역사를 바로 세우고, 그것을 바르게 계승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의식에는 적잖은 문제가 쌓여있다. 걸핏하면 일제의 식민지사관을 문제 삼지만 우리 스스로 저지른 역사의 왜곡과 역류를 우리가 모르는 일도 적지 않다. 알고 보면 식민지사관보다 더 폐해가 큰 것이 뿌리 깊은 사대주의 사관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전하는 우리의 최고 역사기록인 <삼국사기>는 고작 12세기를 올라가지 못하니 천 년도 안 되는 역사책으로 반만년 역사를 내세우기가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도 철저한 사대주의 사관으로 일관해서 올바른 역사라고 자부하기 어렵다. 우리 최고의 역사기록인 <삼국사기>가 그런 형편이니 고려를 청산하려는 의도가 강했던 조선인이 기록한 <고려사>인들 제대로 쓰여졌을 리 없다. 현대사에서는 상해임시정부를 단절시키려 하고, 민족 분단을 고착시키고, 친일파들이 득세하였으니 이 땅에 정의의 역사를 실종시켰고, 남북분단과 이념의 갈등에서 야기된 현대사는 매우 비극적이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역사의식의 결여이다. 최고의 역사기록이라는 <삼국사기>가 천 년도 되지 않는 것도 알고 보면 우리의 ‘역사의식’이 부족해서이다. 우리는 역사의 기록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만약에 당대의 역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이전의 기록을 고의로 폐기했다면 역사적 만행이다. ‘역사’는 지난 일이지만 ‘의식’은 미래의 설계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역사를 왜곡하거나 포기하였고, 의식이 없어 뼈저린 역사의 교훈은 흘려버렸으니 자연히 미래의 설계에도 서투르다. 그래서 우리의 대한민국은 오천 년 역사는커녕 백 년의 역사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실정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광대한 만주벌판은 물론 백두산도, 휴전선 이북도 존재하지 않는다. 大韓民國대한민국이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고작 반도의 반쪽이나마 그마저도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고 요즈음 난리이니 대한민국-Great Korean이라는 이름은 허풍이다. 이 모든 비극은 우리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역사의식이 없어서이다.


역사는 과거보다 현재, 미래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정부 수립 이래 우리 정치, 사회의 역사는 그야말로 난맥상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의의는 정의를 세우는 데에 있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역사도 있지만 그것은 정의가 불의를 이기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의 현대사에는 정의가 불의를 이겨 본 적이 별로 없다. ‘정의는 불의를 이기지 못한다’는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국민이다.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우리가 당면한 민족적 과업이다. 역사의 功過공과를 밝히지 않는다면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 수 없고, 불의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민족주의사관을 적극 표방하였다. 그 결과로 역사의 功공은 천명되었지만 반대로 그 過과는 덮여진 부분이 많다. 긍정적 역사관, 국가관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 해서 부정적 역사가 가려진다면 올바르고 균형적인 역사관이 설 수 없다. 역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중요하지만 반성과 정의는 더 중요하다. 일제의 잔재를 없애는 것도, 과거의 청산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제의 건물을 허무는 것보다 건물에 담긴 교훈을 새기는 것이 더 역사적이다. 요즈음처럼 국수주의가 민족주의로 호도되거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로 오도된다면 우리의 역사는 위험해진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반역사를 목도하고 있고, 이를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 진정한 우리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기만족의 자화자찬보다는 민족의 대계를 위한 자기성찰의 자세가 절실하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역사의 죄인들이 국론화합과 국가안보를 내세워 진실과 정의를 포기하라고 떼를 쓰고 있다. 역사바로세우기는 반드시 해야 할 과업이고, 정치보복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이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역사의식의 결여라는 사실을 뼛속에 새겨야 한다. 지금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 이와 관련되는 몇 가지 사례를 생각나는 대로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