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30

술을 끊자

by 김성수

已 斷 酒 이단주

鄭澈 1536-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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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君何以已斷酒 그대는 물었지, 왜 술을 끊었느냐고-

酒中有妙吾不知◎ 술에 있는 오묘한 진리 나는 알지 못한다오.

自丙辰年至辛巳 병진년부터 신사년까지

朝朝暮暮金屈巵◎ 아침저녁으로 술잔을 기울였어도

至今未下心中城 지금도 마음의 근심을 떨어내지 못했는데-

酒中有妙吾不知◎ 술에 있는 오묘한 진리 나는 알지 못한다오.

이 시는 근체시가 아니라 고시입니다. 그래서 詩行과 음성률도 자유롭고, 대우도 없습니다. 의미 구조도 일방적인 독백의 방식으로 자유롭습니다. 독백 형식으로 되어있는 譚詩이기도 합니다. 2구와 6구는 반복구로 되어 있는데 한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루하기는커녕 詩境을 더욱 깊이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제목은 ‘술을 끊었다’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끊을 수 없는 것이 술입니다. 결국 제목은 反語인 셈입니다. 화자의 말을 들어보면 斷酒의 여부가 확실치 않습니다. 2구와 6구는 반복인데 술의 오묘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술을 끊은 것인지, 끊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애매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의 詩想이나 詩境으로 보아서 결국 술은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5구의 心中城은 ‘마음속의 근심거리’인 愁城을 비유한 것인데 이것을 털어낼 수 있는 것은 술뿐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근심거리를 털어내지 못했으니 술의 오묘한 진리를 알 때까지 마실 수밖에 없는 일이죠. 화자의 의중을 그대로 옮기면 ‘술에 있는 진리 나는 알지 못하니 알 때까지 계속 마실 수밖에-’ 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술을 마음 놓고 마시겠다는 배짱도 내세울 수 없으니 명분으로나마 ‘술을 끊었노라’라고 헛맹세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태여 이 句를 중복시킨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시로 읽는 한시>에서


問문君군何하以이已이斷단酒주

酒주中중有유妙묘吾오不부知지.

問君을 그대로 풀이하면 ‘그대에게 묻노니’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다음부터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의 구분이 모호하게 됩니다. 서정시는 원칙적으로 화자의 독백으로 되어있으니 이 시도 화자가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즉 1구는 청자의 질문을 화자가 인용하는 형식으로 말하는 것이므로 여전히 청자는 君이어야 하고, 다음부터는 당연히 청자에 대한 화자의 설명이어야 詩가 자연스럽게 진행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화자인 작자의 질문에 청자가 술을 못 끊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되어서는 시 전체의 흐름이 매우 어색해집니다. 서정시가 어떻게 남의 얘기로 끝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순을 잠깐 바꾸어 ‘그대는 물었지’라고 옮겨야 詩境에 맞을 것입니다. 시에서는 구태여 어순과 문법 어법을 고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시인은 술을 즐기는 가운데에서도 여러 번 술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었다고 합니다. 이 시는 아마도 그 과정에서의 일을 적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何以는 어떻게?라고 옮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의 흐름으로 보아서 왜?라고 했습니다. 已는 구태여 따로 번역하지 말고 서술어의 어미를 과거형으로 하는 것이 시어로 좋습니다. 이 시는 자문자답의 대화체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도치법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역시 어미에 변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대는 물었지, 왜 술을 끊었느냐고.’ 에 대한 대답으로 ‘술에 있는 오묘한 진리 나는 알지 못한다오.‘ 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酒中有妙는 술에 있는 眞理를 알지 못하니 그 묘한 진리를 알 때까지 계속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배짱입니다.


自자丙병辰진年년至지辛신巳사

朝조朝조暮모暮모金금屈굴巵치.

앞에 이어 자신의 음주 내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에 자신의 화려한 주력(酒歷)을 호기 있게 과시하고 있습니다. 병진년에서 신사년까지 술을 마셨다면 26년간을 계속 술을 마셨다는 말이니 그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알 만합니다. 이 정도의 술에 대한 소신과 믿음을 가지고 술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朝朝暮暮는 ‘아침저녁으로’를 반복하였으니 결국 ‘언제나’이고, 金屈巵는 의식용으로 쓰는 고급 술잔입니다. 선조는 그가 하도 술을 마셔 특별히 술잔을 내리고 한 잔만 마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朝暮를 중복한 대신에 서술어가 빠져있으니 번역에서 이것을 보완해야 합니다. ‘병진년부터 신사년까지 아침저녁으로 술잔을 기울였어도.’


至지今금未미下하心심中중城성

酒주中중有유妙묘吾오不부知지.

下는 심중성을 ‘함락’시켰다는 동사입니다. 心中城을 그대로 옮긴다든지, 근심의 성-愁城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음의 근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우리 시답게 합니다. 결국 마음의 근심을 씻어낼 수 있는 특효약이 술인데 그것을 어떻게 끊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2구를 다시 반복한 것은 음주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음의 근심을 떨어내지 못했는데- 술에 있는 오묘한 진리 나는 알지 못한다오.’ 그러니 술을 끊을 수 없다는 의지를 에둘러 나타낸 수단이 교묘합니다. ‘술을 끊어 보자’라고 목표를 정했지만 거기에는 단주의 성공 여부는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는 능청이 깔려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시에서 未斷酒의 첫 구에 問君何以未斷酒(그대는 물었지, 어찌 아직 술을 끊지 못했느냐고?)와 비교해 보면 已이건, 未이건 결국 술을 끊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는 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풍류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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