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늙은이는 매사가 고맙다.

by 김성수

옛날 입시철이 되면 전국 수석 합격자들이 했던 말 중에 ‘공부가 가장 쉬웠습니다’ ‘교과서에 충실했습니다.’라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싶어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경지에 풀이 죽었다. 나에게는 공부가 제일 어려웠고, 과외는커녕 교과서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나름대로 무언가 자랑할 일이 있다면 기껏해야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생각해 보니 노력이나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일의 성사가 결정되는 일은 오히려 드물었던 것 같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남보다 나을 것이 없었으니 남보다 나은 결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행운이 더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행운이란 내 능력 밖의- 그야말로 운이 좋은 것이다. 나에게는 작은 운은 없었지만 결정적인 행운은 드물게 있었던 것 같다. 길에서 돈을 줍는다든지 복권이나 행운권 당첨이 된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나 병치레가 적었다든지, 평소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입학시험에는 떨어진 적이 없었다. 능력에 비해서 직업 운은 좋은 편이었고, 사기를 당하거나 큰 사고를 당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철이 더 들어보니 그것은 우연한 행운이라고 해서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인생을 필연으로 규정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지만 그저 모든 일을 우연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이다. 흔히 ‘행운을 빈다’라고 덕담을 하지만 그 속에는 ‘네 능력으로는 어렵다’라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잠재의식이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왕 덕담을 하자면 ‘너는 잘 해낼 거야’가 더 좋을 것 같다. 인간은 이성적, 합리적인 면보다는 감성적, 비합리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인류 역사를 보면 감성에서 이성으로 발전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감성적, 비합리성이 더 인간적인 것 같다. 그래서 이성, 합리를 따지는 사람을 비인간적이라고 하는 일이 많다. 젊었을 때는 나도 이성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거기에 자신이 없어진다. 인생을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맞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지만 그렇다고 매사를 우연으로 돌린다면 인생이 허무해진다. 인생이 우연이라면- 만사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님이 내 불운을 가지고 가셨다는 어느 역술가의 말이 전혀 허황된 미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님은 늘 나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돌아가셨다. 삼촌과 동생은 신부님이고, 누나는 수녀님이니 장남인 나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실 것이다. 감성적이요, 비합리적 사고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 기도들이 나를 있게 하였고, 그래서 나는 하느님의 빽이 든든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를 게을리 했다. 부족한 신앙으로 어설픈 기도를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내 능력이나 노력이란 하잘것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니 내 인생을 두고 ‘최선을 다했다’라면 모르지만 ‘내 노력의 결과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교만한 죄가 틀림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언가 성사가 되었다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더 적절한 말인 것 같다. 그리고 더 생각해 보니 일이 성사되건 말건 매사에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살다 보니 노력한다고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 대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노력 끝에 성공’ ‘뿌린 대로 거둔다’라고 말하지만 매사가 그런 것도 아니다. 노력이란 사람의 도리를 한 것은 맞지만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예부터 작은 일은 사람이 하기에 달렸지만 큰 일은 하늘의 뜻에 달렸다고 했다. 노력을 강조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그것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이 해야 할 윤리적 도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盡人事待天命 - 사람의 일을 다하고 하늘의 처분을 기다리라고 했다. 이른바 입지전(立志傳)적인 사람도 그가 거둔 성공은 인생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도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젊을 때의 사정이지 늙은이는 힘을 다할 수 있는 기력조차 없다. 백 년을 장담하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좋은 일이긴 하나 늙마에 고단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 대가를 보장할 수도 없다. 더구나 옳지 못한 목적이었다면 성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매사에 '고맙습니다’가 맞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이왕이면 한자어인 ‘감사합니다’보다는 ‘고맙습니다’가 더 좋을 것 같다. ‘感謝합니다’를 중국인들이 들으면 또 우쭐해 할지 모른다. 사실 나이가 들고 보면 매사에 고맙지 않은 일이 없다. 우선 칠십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또래의 열 중 두셋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살아있은들 죽느니만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치매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노인들은 질병, 외로움, 생계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많은 노인들은 고달픈 말년에 고마워할 마음의 여유조차 갖기 힘들다. 이렇다 할 덕을 쌓아 놓은 것도 없건만 아직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먹고 살 걱정 없이 조강지처와 같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겹도록 감격해야 할 일이다.


그저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늙은이를 존중하고, 보호해 주고, 먹여살려 주는 사회와 아내와 자식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은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회와 후손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 보답은 못할망정 사회에 불만을 갖거나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며 늘상 말세를 탄식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은 인생을 내 공이나 우연, 행운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살다 보면 걱정거리, 불행한 일도 많다. 특히 육체적, 정신적인 쇠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 살게 해 준 하늘의 은혜이니 그저 고마워할 일이다. 설령 신이 없더라도, 내세가 있건 없건, 매사에 고마워하는 마음은 늙은이의 도리요, 자신을 위한 삶의 방도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도파민이 왕성해져 마음이 편안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하니 오래 산들 젊은이들이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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